[msv. letter] no.35 개발도상국 위생과 디자인



Meet Social Value, 사회적 가치를 만나는
MSV 뉴스레터에서는
'디자인의 사회적 가치'와 '포용적인 디자인'
그리고 '접근성'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다룹니다.




삶의 질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위생


깨끗하지 않은 물과 위생적이지 않은 화장실은 폐렴, 장티푸스, 콜레라와 같은 질병 감염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다. 세계보건기구(WHO)의 발표에 따르면 코로나19 유행 기간 동안 집에서 비누와 물로 손을 씻을 수 없는 인구가 전 세계 10명 중 3명이나 되었다. 또한 현재 추세라면 2030년에도 전 세계 67%만이 안전한 위생 서비스를 받게 되며, 28억 명의 인구는 그렇지 못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유엔 지속가능발전 목표(SDGs)에서도 6번 항목인 깨끗한 물과 위생에 대한 접근성 (Clean Water and Sanitation)은 빈곤 감소와, 식량, 인권, 교육 등에 가장 기초가 되는 항목으로 꼽고 있다. 이번 뉴스레터에서 전 세계적으로 중대한 이슈인 위생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사례들을 만나보자.

아프리카 니제르Niger 의 산부인과 병동, 손을 씻을 깨끗한 물과 멸균된 도구, 충분히 훈련된 간호사 등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Siri Wood




물 없는 변기 시스템 루와트 LooWatt


물과 함께 개발도상국 위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화장실이다. 2009년 런던에서 설립된 루와트는 개발도상국 사람들에게 안전한 위생 시설을 제공할 뿐 아니라, 글램핑 등 생태 관광 시장에 고품질의 화장실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통적인 하수도를 활용한 위생 시스템은 개발비용이 비쌀뿐더러 개발도상국에서는 안정적으로 물공급이 어렵다. 따라서 루와트는 물을 사용하지 않되 최종적으로는 분뇨를 전기 자원으로 재생산 가능한 폐쇄형 루프closed-loop 솔루션을 개발했다. 우선적으로 분뇨는 생분해성 고분자 필름에 밀봉되어 악취와 전염병이 도는 것을 안전하게 차단한다. 또한 바이오 가스와 비료, 전기를 생산하는 특수 보관 통으로 이동되고 에너지로 다시 판매되어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 루와트는 빌 & 멜린다 게이츠 재단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의 지원을 받았고, 현재 마다가스카르, 필리핀 등 전 세계 1000여 곳에 화장실을 설치하였다.

루와트는 개발도상국 환경을 고려해 물 대신 생분해가 되는 필름을 활용하고 있다. ©Loowatt


막대한 비용의 하수도 설치가 어려운 개발도상국에서 루와트는 저렴하면서도 자원 순환을 고려한 위생시스템이 될 수 있다. ©Loowatt

 


개발도상국 산모들을 위한 위생적인 출산 키트 젠마 JANMA Clean Birth Kit


개발도상국에서는 매년 약 백만 명 이상의 산모와 태아가 사망한다. 출산을 할 때 청결하고 위생적인 출산 도구가 없기 때문이다. 엔지니어 출신의 사회적기업가 주바이다 바이 Zubaida Bai는 2008년 여름 인도에서 조산사와 함께 대화를 나누다가 탯줄을 자르는 도구로 농기구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했다. 이후 시장조사를 통해 알게 된 저렴한 출산 키트들 역시 비위생적이었는데, 산모들은 차라리 바닥에서 아이를 낳는 게 낫겠다는 의견을 보일 정도였다. 이에 주바이다는 2010년 ayzh를 설립하고 젠마Janma 라는 저렴하면서도 효과적인 출산 키트를 출시했다. 이후 젠마는 개발도상국의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판매되었고 ayzh는 출산 키트뿐 아니라 신생아와 산모를 위한 다양한 케어 제품을 출시하며 여성으로서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해 앞장서고 있다.


키트에는 밀봉된 수술용 칼날, 탯줄 집게, 비누, 장갑 한 쌍, 아기를 닦아줄 천, 산모 혈 흡수 패드 등
위생을 고려한 6가지 도구를 담았다. ©ayzh

 

소외된 지역일 수록 출산 단계에 대한 위생적인 지침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그림을 통해 안전한 출산을 설명한 키트 설명서. ©ayzh

 



도시는 누군가의 ‘집'이다.


건축가 칼핏 아샤르 Kalipit Ashar와 마유리 시소디아 Mayuri Sisodia는 무분별하게 계획되는 도시 환경과 시민들의 열악한 삶에 대해 깊은 고민을 했다. 인도에서 많은 사람들은 집보다 도시에서 더 많은 생활을 보낸다. 그렇다면 ‘집으로서 도시' 는 어떤 환경과 디자인을 갖추어야 할까? 이들의 프로젝트는 이 한 가지 질문에서부터 시작했다. 칼핏 아샤르는 바르셀로나에서, 마유리 시소디아는 런던에서 각각 건축을 공부하였고 이들의 터전이었던 뭄바이의 도시를 더 지속 가능하게 바꾸는 데 관심을 가지고 매드인 뭄바이 건축사무소 MAD(E) IN MUMBAI architects를 설립하였다. 이번 뉴스레터에 이들과 진행한 MSV 4호 인터뷰의 일부를 싣는다.

 

Interivew

칼핏 아샤르Kalpit Ashar
마유리 시소디아Mayuri Sisodia


개발도상국 공중 위생의
총체적인 비전을 제시

 

인도에서는 화장실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항상 따라다녀요. 화장실이란 더러운 곳, 피해야 할 곳, 절대 들어가고 싶지 않은 곳이라는 인상이 강하죠. 주택단지 근처에 공중화장실을 지었으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주변이 금방 더러워질 걸 잘 아니까요. 사실 저희의 프로젝트는 공중화장실에서 시작하지 않았어요. 도시 전체를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했죠. 뭄바이의 거리 풍경, 조경을 분석하고 정부가 시민을 위한 공공 편의시설을 어떻게 제공하는지도 주의깊게 살펴봤어요. 그 중 하나가 화장실이었습니다.


모든 정부가 위생과 공중화장실을 약속했지만 대부분 헛된 공약으로 남았어요. 이행이 된다고 해도 실제 공사 과정에서 변질되는 부분이 많아서 결국 의도했던 수준의 절반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죠. 그러던 중 2014년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전국적으로 공중화장실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어요. 스와 흐 바랏 인도 Swachh Bharat India, 혹은 깨끗한 인도 Clean India 라는 이름으로 도입된 도시와 농촌 지역 위생 개선 사업이었죠. 그 일환으로 인도 전역에 대규모 공중화장실 공사가 시작됐습니다.


정책의 의도는 좋았으나 정부의 야심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어요. 일주일에 5,000개, 혹은 10,000개 이상의 공중화장실을 찍어내기 시작했어요. 퀄리티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이었죠. 겉으로는 멋져 보였지만 실제로는 전혀 사용할 수 없었어요. 채광이나 환기시설도 전혀 없었기 때문에 악취가 진동했고요. 농촌 뿐만 아니라 도심 한가운데에서도 같은 상황이 발생했죠. 화장실이 하나 지어지면 정치인들이 몰려와서 완공식을 열고 기념 셀카만 찍고 가버리기 일쑤였습니다.


한편에는 교량이 건설되었지만 맞은 편에는 여전히 슬럼가가 형성되어 있는 모순적인 구조에
이들은 도시 환경을 총체적으로 고민하게 되었다. ©매드인 뭄바이


매드인 뭄바이에서 작업한 버스정류장 화장실. 단순히 화장실 기능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거점이자 커뮤니티 공간으로도 활용된다. ©매드인 뭄바이

 

대중의 모임을 위한 공간으로도 활용된다. 지역사회의 특징을 반영한 결과다. ©매드인 뭄바이


가장 평범하고 하찮을 수 있지만
도시 시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화장실 프로젝트

 

우리는 이 문제를 정부에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화장실이라니?', 건축가로서 할 수 있는 가장 평범하고 하찮은 프로젝트이라고 해도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이라고 느꼈죠. 2017년에 25명의 젊은 건축가를 모아서 디자인 스튜디오를 차렸어요. 어디서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지,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 지 함께 고민하기 시작했죠. 그렇게 화장실 선언문 The Toilet Manifesto이 탄생했습니다. 공중위생 인프라의 총체적인 비전 holistic vision을 제시하기 위해 공중화장실의 위치부터, 건축자재, 유지관리 까지 살펴봤죠.


각 도시의 특징을 종합해 총 10가지 화장실 유형 Toilet Typology으로 분류했습니다. 예를 들면 화장실을 지을만한 부지가 없다는 어려움이 있었어요. 좋은 위치는 다른 시설 차지였고 우리에게는 가장 까다롭고 외진 구역만 주어졌죠. 하지만 화장실이 눈에 잘 띄는 곳에 있어야 사용성을 개선할 수 있었어요. 고민 끝에 이미 사용되고 있는 공간을 활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기존 공공시설에 화장실을 통합하는 식으로 설계했죠. 시민들의 통근길이나 여가시설을 사용하는 방식도 고려해서 화장실 위치와 형태를 정해가기 시작했습니다.


도심과 지역사회의 주요한 특징을 조사하여 10가지 타입의 화장실 모델을 제시하였다.
실제로 인도 전역에 53개의 화장실을 실제로 설계하였다. ©매드인 뭄바이


 

공공디자인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유지보수

 

화장실 설계에서는 빛과 환기가 1순위라고 생각해요. 화장실 안에 빛이 충분히 들고 공기의 순환이 일어나야 하죠. 일종의 셀프 정화 효과라고 할 수 있어요. 두 번째는 건물 자체가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뤄야 해요. 그래야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그 장소만의 건축학적 정체성을 부여할 수 있죠. 화장실인데, 화장실만은 아닌 공간이 되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디자인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그 곳이 제대로 유지 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자재를 사용하든 견고한 시설이 되어야 하죠. 하루 방문자가 수천 명이 되는 지역이라면 더더욱 중요합니다. 요즘 인도에서는 획기적인 화장실 솔루션을 찾으려는 스타트업들을 많이 볼 수 있어요. 가볍고 저렴한 재료를 사용하려고 하죠. 하지만 대부분 파손되기 쉬워요. 저희는 벽돌, 콘크리트, 모르타르 석재와 같은 더 전통적인 소재로 세월을 견딜 수 있는 구조를 만들려고 하죠.


외부에서는 볼 수 없도록 가려져 있되, 환기가 잘 되도록 만든 모듈벽 ©매드인 뭄바이




강성혜 미션잇 리서처

영국 옥스퍼드 대학원에서 사회정책을 공부하고 공공기관에서 근무했던 강성혜는 논문으로는 알 수 없었던 실제 사회 곳곳의 목소리를 듣고자 미션잇에서 리서처 겸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지금까지 전혀 몰랐던 세상을 알게되는 순간들을 꽤나 자주 마주하고 있다.


김병수 미션잇 대표

사회적으로 시선이 닿지 않는 부분들까지 디자인을 통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신념으로 미션잇을 운영하고 있다.삼성전자에서 제품 디자이너로 일했으며,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원에서 사회적기업가정신을 공부했다. 현대 사회 문제를 디자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MSV를 발행하며 시선의 변화를 이끌어가고자 한다.




MSV 뉴스레터 구독하기 

(하단 로고 클릭)


사회적 가치를 만나는 MSV 뉴스레터에서는 매거진에서 다루고 있는 핵심적인 주제들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인사이트를 전달 드립니다. 핵심적인 키워드는 '디자인의 사회적 가치 Design for Social Value'와 '포용적인 디자인 Inclusive Design' 그리고 '접근성Accessibility' 입니다.


주소 경기도 과천시 중앙동 38 힐스테이트 101동 612호
회사명 주식회사 미션잇 대표자 김병수
사업자등록번호 870-88-01764 통신판매업신고 제2021-서울서초-2264호
제안/문의 hello@missionit.co 전화 02-6289-6000
COPYRIGHT ⓒ MISSION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