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v. letter] no.37 우크라이나 피난민을 위한 임시보호소 건축



Meet Social Value, 사회적 가치를 만나는
MSV 뉴스레터에서는
'디자인의 사회적 가치'와 '포용적인 디자인'
그리고 '접근성'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다룹니다.




인류 역사에서 전쟁만큼 상처와 아픔을 남긴 것은 없다. 지난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우크라이나의 누적 난민은 천만 명을 넘어섰고 수 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유니세프의 통계에 따르면 2022년 10월 기준 우크라이나 난민의 90%는 여성과 어린이이며, 이들은 남편과 아버지를 전쟁터에 보낸 아픔과 전쟁으로 인한 불안, 스트레스 등으로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크라이나 키이우에 본사를 둔 건축 스튜디오로 발벡 뷰로 Balbek Buero는 이러한 피난민들을 위해 임시보호소 건축과 마을을 재건하는 리우크라인 Re:Ukraine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4월 젤렌스키 대통령과도 임시보호소를 위해 직접 논의를 했던 이들은 “사람들의 집은 빼앗아 갈 수 있지만, 존엄성은 빼앗을 수 없다.”라고 했다. 지난 주 금요일(13일) 화상으로 발벡 뷰로의 대표인 슬라바 발벡Slava Balbek 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번 뉴스레터에 그 일부를 싣는다.

키이우 인근 지역 답사를 통해 임시보호소를 설치할 부지를 찾고 있는 발벡 뷰로 팀원들 ©Balbek Buero




파일럿 프로젝트를 통해 
피난민들의 실제 삶을 반영한 
임시보호소 건축


임시보호소 건축물의 렌더링 이미지. 현재 시공 전 시뮬레이션을 진행하는 프리컨스트럭션preconstruction 단계에 있다 ©Balbek Buero


현재 Re:Ukraine 프로젝트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 궁금합니다.

Re:Ukraine은 현재 3가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국내 난민 임시보호소 신설 사업이고, 두번째는 폭격으로 파괴된 작은 마을들을 재건하는 사업입니다. 마지막으로 주요 도시마다 기념물을 보호하는 구조물을 설치하고 있어요.

다양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군요. 난민 임시보호소 신설 사업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먼저 우크라이나 서쪽에 위치한 즈브라 Zbarazh 라는 작은 도시에서 임시보호소 건설을 준비하고 있어요. 11만 평 정도 되는 부지에 시민 5,000여명을 수용하는 대규모 사업이라 인프라 문제도 동시에 고민하고 있습니다. 임시보호소는 체르니우치 Chernivtsi와 부차 Bucha에도 준비 중입니다. 부차는 이번 전쟁 중에 대량 학살이 발생한 도시죠. 영국 정부 관계자가 직접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영국 건설회사와 협력해 1.5만평에 1,800명 정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지을 계획입니다. 얼마 전 부차 지방정부와 MOU를 체결했고 부차 시에서 직접 부지를 제공했어요. 현재 시공 전 사전 시뮬레이션을 진행하는 단계에 와 있고 이번 달 부터 본격적으로 공사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그 외에도 파일럿 프로젝트 자금을 모으기 위해 모금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임시보호소를 지을 때 가장 중요한 단계가 바로 파일럿 프로젝트 단계라고 하셨는데요. 왜 그런가요?

파일럿 프로젝트를 거쳐야만 임시보호소를 가장 쉽고 빠르게 지을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현재 50명의 시민, 15가구가 실험에 참여하고 있어요. 임시보호소 옆에는 저희 오피스도 있고요. 파일럿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발벡 뷰로 관계자들이 직접 그 곳을 상주하며 사용자들을 관찰하고 있습니다. 식사는 어떻게 하는지, 하루 일과는 어떻게 보내는지, 주민들의 전반적인 생활방식을 이해하고 디자인에 반영하고 있어요. 대부분 근처 키이우 Kyiv에서 모집한 지역 주민들이에요. 임시보호소는 침공 당한 마을 바로 옆에 지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원래 살던 집과 10분 거리 이내에 있어야 사람들이 자기 집을 고치러 가기도 하고 평소처럼 동네 이웃들과 이야기도 나눌 수 있으니까요. 전쟁으로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고 해도 우리가 지킬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발벡 뷰로의 대표인 슬라바는 자기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것이 창의력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안전 지대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면서는 결코 피난민들을 위해 건축할 수 없기에, 격전지와 가까운 지역으로 오히려 거처를 옮겼다고 한다. 건축 일과 동시에 우크라이나 군대에서 드론 파일럿으로 교대 근무를 하고 있다. ©Balbek Buero




임시보호소 해체 후
주민들이 살아갈 
생태 환경까지 고려한다 


임시보호소의 디자인을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저희 디자인은 두 가지 공간으로 나뉩니다. 하나는 개인공간과 화장실, 부엌 등 공동 공간이 같이 있는 모듈 타입이에요. 다른 하나는 가족 단위로 지낼 수 있는 아파트 입니다. 아파트는 1층 짜리 건물로 엘레베이터 없이 안전하게 지었고 모듈형 보호소는 2층으로 디자인했습니다. 모듈형의 경우 2층으로 짓는 게 훨씬 효율적이었어요. 건물을 지지하는 기둥으로 6미터 짜리 목재를 사용했기 때문이죠.

임시보호소에 사용된 소재도 궁금합니다. 가장 저렴하고 구하기 쉬운 소재를 사용하셨다고 들었는데요.                   

로컬 소재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했어요. 유럽이나 타 지역에서 소재가 이송될 때 까지 기다릴 일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죠. 현재 우크라이나 남쪽이 가장 안전한 지역입니다. 그곳에 양질의 목재를 제공하는 기업이 몇 군데 있어요. 가장 빨리 조달할 수 있는 소재로 가장 쉽고 효율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로는 시간, 돈, 규모라는 프로젝트 삼각형을 모두 충족하기가 쉽진 않지만요.

효율성이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였군요. 지속가능성도 고려하셨다고 들었어요.

맞습니다. 목재를 선택한 데는 생태학적 이유도 있어요. 전체적인 건물 시스템은 캐나다나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방식이에요. 목재로 된 구조물을 쉴드 shield로 덮어서 내부 단열 효과를 내는 거죠. 하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내부를 석고로 마감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2년 후에는 임시보호소의 집을 다른 위치로 옮길 예정이기 때문이에요. 부차 지방 정부와 2년을 계약했고 이후에는 타 지역으로 이동해 다른 난민들이 집을 이용하도록 할 계획입니다. 각 집은 나사로 땅에 고정 돼 있어요. 바닥에는 건물을 지탱하는 수평 방향의 빔beam이 있고 그 위로 구조물을 올린 거죠. 해체 후를 고려한 건축이에요. 땅에서 나사를 뽑아서 건물을 옮기면 그 자리에 농사를 지을 수도 있죠. 마치 레고처럼 집을 일부 해체하고 다른 위치에서 다시 조립할 수 있게 디자인했습니다. 재조립 할 때는 원래 투입한 예산의 25% 정도만 들어서 경제적이죠.

임시보호소를 철거하지 않고 해체 후 다른 지역에서 재조립한다는 발상이 정말 인상적인데요.

현재 우크라이나 정부가 영토 탈환에 속도를 올리고 있고 3, 4달 내에 다른 지역도 탈환 예정이기 때문에 다양한 지역으로 집을 이동할 수 있는지 검증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집을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과정은 파일럿 프로젝트를 통해 테스트 해보고 있습니다. 파일럿 프로젝트 부지의 일부를 실험 공간으로 쓰고 있는데 구조물을 작게 지어보고 해체한 다음 20미터 떨어진 곳에 다시 짓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죠. 몇 회까지 재건축이 가능한지 확인해보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부차 시의 파일럿 프로젝트로 지은 임시보호소는 어디로 재배치될 예정인가요?

지금은 발벡 뷰로가 지은 임시보호소가 키이우 부차에만 있지만 부차가 군사 기지로 사용될 날은 1년도 남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이후에는 건물을 일부 해체하고 우크라이나 남쪽, 서쪽, 동쪽 지역으로 이동해 재조립 할 계획입니다. 그 곳에 거주하는 2,000여명의 시민들에게 더 필요할 날이 올테니까요. 공사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 끊임없이 실험하고 있습니다. 파일럿 프로젝트가 끝나고 남아있는 집들은 부차 지방정부가 지역 특색에 맞게 사용할 계획입니다. 


전쟁 중에 지어진 건물이 커뮤니티 안에 계속 살아가는 거네요.

맞습니다. 유치원이나 학교로 바꿀 수 있죠. 향후 25년, 30년 정도는 사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전쟁 중에만 이용할 수 있는 건물을 짓고 철거하는 게 아니라 다양하게 재활용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임시 피난소에 있는 아이들에게도 놀이는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어른들에게도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여백의 장소가 마련되어야 한다. 임시 건물이지만 가장 편안함을 줄 수 있는 환경은 인간의 존엄성과 연결된다.
©Balbek Buero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공간 :
물리적 환경과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고민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사람들의 집은 빼앗아 갈 수 있지만, 존엄성은 빼앗을 수 없다”라는 말이 깊은 울림이 있었는데요.

발벡 뷰로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바로 존엄성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져야 한다는 뜻이에요. 삶의 어느 단계에 와 있든 마찬가지죠. 저희는 그 중에서도 임시로 거쳐가는 단계, 즉 임시보호소에서 지내는 시간에 집중하기로 한 겁니다. 이곳에 사는 시간이 6개월이 되든, 1년이 되든 주민들이 가능한 한 가장 편안한 환경을 누릴 수 있어야 해요. 바로 이런 중간 시기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본 거죠.

발벡 뷰로가 정의하는 존엄성이란 어떤 것인가요?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편안함은 정신건강이라는 상위 차원에서 정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몸과 마음의 긴장이 이완되기만 한다면, 그러니까 가족과 친구들이 모두 안전하다는 사실만 확인된다면 어디서 지내든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죠. 분위기만 편안하다면 실내체육관 같은 곳도 견딜만한 거예요. 모든 것이 다 인체공학적 디자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에요. 난방이 되는지 안 되는지, 하룻밤 정도 보낼 공간이 있는지 없는지가 치명적인 문제는 아닌 거죠. 건물이라는 물리적인 환경과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고민은 동시에 이뤄져야 합니다. 따로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는 문제에요. 인간의 사회성이나 정신건강에 대한 고민 없이 건축이라는 개념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주거지 재건을 위해서 마을 곳곳에 우크라이나의 가옥 디자인 요소들을 수집한다고 한다. 문화적인 정체성도 존엄성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Balbek Buero


본 인터뷰의 전문은 MSV 소셜 임팩트 시리즈 4호
<안전을 위한 디자인 : 생활 안전부터 재난까지>
에서 볼 수 있습니다.
11월초 출간 예정




강성혜 미션잇 리서처

영국 옥스퍼드 대학원에서 사회정책을 공부하고 공공기관에서 근무했던 강성혜는 논문으로는 알 수 없었던 실제 사회 곳곳의 목소리를 듣고자 미션잇에서 리서처 겸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지금까지 전혀 몰랐던 세상을 알게되는 순간들을 꽤나 자주 마주하고 있다.


김병수 미션잇 대표

사회적으로 시선이 닿지 않는 부분들까지 디자인을 통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신념으로 미션잇을 운영하고 있다.삼성전자에서 제품 디자이너로 일했으며,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원에서 사회적기업가정신을 공부했다. 현대 사회 문제를 디자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MSV를 발행하며 시선의 변화를 이끌어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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