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가 고대 중국 뤄양에서 발명된 이후 실크로드를 지나 유럽에 다다르기까지 걸린 세월은 약 천 년. 이 경이로운 문물은 스무 세기 동안 글, 때로는 그림을 담고 인류의 물질적 정신적 풍요를 끌어냈다. 이 오랜 시간이 무색하리만큼 빠르게 종이를 대체하는 신문물이 있다. 바로 디지털 매체이다.
개인용 컴퓨터의 발명과 PC의 보급, 인터넷 시대의 도래, 스마트폰의 등장. 굵직한 사건만 따져도 디지털 세상의 나이는 겨우 49세다(개인용 컴퓨터는 1974년 미국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해, 종이 없는 세상을 선언한 것도 불과 12년 전이다. 그리고 2020년, 예기치 못한 팬데믹의 발발은 디지털 전환이라는 대변화의 속도를 더욱 앞당겼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이름으로 시행된 사상 초유의 조치, 외부 세상과의 단절은 디지털을 유일한 희망처럼 비췄다. 생사와 직결될지도 모르는 모든 중요한 정보는 디지털 매체를 타고 전파됐다.
단절된 것은 오프라인 세상만이 아니었다. 이미 경제활동의 전선에서 밀려난 고령층은 디지털 세상에서 또다시 소외되기 시작했다. ‘노인세’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오프라인 대면 서비스 이용 시 발생하는 비용이 디지털 비대면 서비스보다 높을 수밖에 없는데, 고령층에겐 디지털 장벽이 높아 이를 피할 수 없는 세금처럼 치러야 한다는 의미다. 관공서 방문 후 문서 발급 비용이나 금융기관 방문 이용 시 발생하는 수수료가 대표적인 경우다. 생필품, 식료품을 구입할 때 다양한 할인 혜택이나 간편한 배송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곳도 디지털 세상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디지털 정보화에 취약한 고령층은 다른 세대에 비해 고스란히 손해를 떠안는 셈이다. 2020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실시한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정보취약계층 중에서도 고령층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이 가장 낮다. 100% 디지털 전환이 머지않은 지금, 고령층의 디지털 소외를 막고 이들을 디지털 세상의 중심 무대로 안내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다.
글 이서이, MSV 객원 에디터
일러스트 김성미, 미션잇 UX리서처
디지털 문해력이란?
디지털 문해력Digital Literacy은 1997년 폴 길스터Paul Gilster가 저서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다. 전통적인 개념의 문해력이 읽고 쓰는 능력을 의미한다면, 디지털 문해력은 문제 해결을 위해 디지털 도구를 활용하며 다양한 유형의 정보를 이해하고 사용하는 능력을 일컫는다. 이전까지 글로 전해지는 지식을 얼마나 잘 습득할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면, 디지털 세상에서는 그 이상의 능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디지털리터러시교육협회에서는 디지털 문해력을 “디지털 기술과 미디어를 활용하여 디지털 데이터, 정보, 콘텐츠를 탐색, 소비, 분석, 활용, 관리, 생산하고, 건강한 디지털 시민으로서 지혜롭게 소통하고 관계를 맺으며, 개인과 사회의 발전을 균형 있게 도모하는 역량”으로 정의한다. 주어진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다루고 해석하고 가공하는 동시에 무수히 많은 디지털 정보 사이에서 허위 정보를 판별하여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까지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유네스코UNESCO, 국제연합UN 같은 국제기관 역시 디지털 문해력을 정의하며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디지털 환경의 범위가 넓은 만큼, 디지털 문해력의 하위 영역도 무척 다양하다. 기본적으로 텍스트와 시각 자료, 동영상 등의 다양한 미디어를 복합적으로 구성하는 능력을 바탕으로, 디지털 도구와 플랫폼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능력 그리고 정보를 탐색하고 소통하고 협력하는 능력까지 넓은 범위를 아우른다. 분야 혹은 매체 유형에 따라 기술 문해력, 코드 문해력, 미디어 문해력, 뉴스 문해력, 소셜 미디어 문해력 등으로 나뉘기도 한다. 공통으로 지목되는 디지털 문해력의 핵심은 자기 주도적 정보 활용을 통한 문제 해결 능력이다. 이에 디지털 문해력은 디지털 역량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이제는 세대를 불문하고 모든 연령, 모든 분야의 노동자, 기업가가 디지털 환경에 적응해 나가며 새로운 역량을 갈고닦아야만 한다. 미국에서는 2014년 인력혁신 기회법Workforce Innovation and Opportunity. Act: WIOA; 공법 113-128이 발효되었는데, 여기서도 디지털 문해력을 노동자의 기본 기술로 다루고 있다. 급변하는 디지털 세상에서 디지털 문해력에 따른 정보 격차가 전 세계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50년 65세 이상의 고령 인구는 우리나라 인구의 40%, 가구로는 절반을 차지할 전망이다. 고령층은 혼자 거주하는 경우도 많고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에 취약하다.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연령대별 고립의 격차가 가장 높아 고령층의 사회적 고립과 고독 문제는 심각한 편이다. 아셈노인인권정책센터에서는 고령층의 사회적 고립을 완화하기 위해 인지행동치료, 사회기술훈련, 친구 맺기 같은 대면 또는 디지털 개입이 필요하며, 교통, 디지털 포용, 건축 환경 등의 인프라 개선과 고령 친화적인 지역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권고한다.
01
생과 사를 가르는 정보 전쟁
보건, 의료
팬데믹이 시작된 직후 우리 사회는 마스크 대란을 겪었다.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는 마스크 수급 안정화 대책을 내놓으며 마스크 5부제를 시행했다. 약국마다 마스크를 사기 위한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섰고 한참을 기다렸다 재고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허탕을 치기 일쑤였다. 정부는 공익을 위해 공적 마스크 재고 데이터를 공개했다. 발 빠른 이들은 약국별 재고 정보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앱을 내놓기도 했다. 모두가 이 영특한 세상을 극찬했고, 약국까지 헛걸음하는 수고를 덜 수 있었다. 고령층을 제외하고 말이다.
2020년 10월 충북에서는 도내 65세 이상 노인 705명을 대상으로 마스크 정보 격차에 대해 조사를 실시했다. 공적 마스크 구입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70.4%인 반면, 앱을 통한 마스크 구입 경험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이 79.6%나 됐다. 마스크 구입뿐 아니라, 전례 없는 전염병에 관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발병 사례, 전파 방식, 정부 지침, 예방법, 치료법 등 모든 정보가 인터넷에서 신속하게 오고 갔다. 심지어 정부에서도 새로운 발표를 내놓을 때도 업데이트가 빠르고 간편한 디지털 플랫폼을 최우선 매체로 간주했다. 어디서 어떤 정보를 봐야 하는지 알 도리가 없는 고령층, 특히 1인 가구는 TV를 통해 한발늦게 전파되는, 선별된 정보만을 기다려야 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위해 온라인 예약을 실시하자 고령층의 디지털 문해력 문제는 더 심각하게 대두되었다. 온라인 사전 예약을 하려면 앱이나 웹사이트에서 본인 인증부터 거쳐야 한다. 디지털 언어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도 의료 기관 목록과 예약 가능한 시간을 조회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고령층은 이 낯선 유저 인터페이스를 겨우 뚫고선 치열한 경쟁 속에 내던져져야 했다.
2014년 미국에서 창립된 리봉고Livongo는 고령층이 주로 앓는 만성 질환에 특화된 디지털 건강 플랫폼을 제공한다. 환자에게 혈당계 같은 디지털 디바이스가 포함된 개인화된 웰컴 키트를 보내주고, 디바이스와 모바일 앱을 처음 사용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지원한다. 1:1 코치를 배치하여 사용자가 시스템에 적응하는 일을 돕고, 사용자 친화적으로 설계된 모바일 앱, 다양한 형식으로 제공되는 교육 자료도 디지털 문해력이 낮은 사람들을 고려한 것이다. 당뇨, 고혈압 등 만성 질환을 앓는 고령층은 리봉고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해 건강을 모니터링하고 AI 기반의 원격 맞춤형 코칭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디지털 문해력을 위한 별도의 교육 없이도, 좋은 고객 경험을 구축함으로써 고령층의 디지털 웰빙을 끌어 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의약품이나 영양제에 관한 정보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세상에서는 의약품 정보가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재가공되어 넘쳐흐르지만 고령층에겐 TV나 지인끼리 주고받는 한정된 정보가 전부다. 디지털 기기에 그나마 익숙한 고령자의 경우 과장되었거나 잘못된 건강 정보에 노출되어 피해를 보기도 한다. 단순히 디지털 기기 사용법을 익히는 것뿐 아니라 디지털 생태계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도와 주의 깊은 판단 능력이 필요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02
대면은 ₩원, 비대면은 0원
금융, 관공서
현금만 주고받는 시대는 지났다. 은행 계좌 운용과 카드 사용은 필수가 됐다. 노동에 대한 대가를 지급받는 것도, 어떠한 거래로 송금을 받는 것도 은행 계좌를 통해 이뤄진다. 디지털화가 급속도로 일어나면서, 금융 거래를 위해 은행을 방문하는 비율은 월등히 감소했다. 모바일 뱅킹이면 거의 모든 금융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덕분이다. 물론 인터넷 환경은 물론 모바일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자는 예외다. 통계청에 따르면 65세 이상의 고령층이 온라인 금융거래만 이용하는 비율은 8%, 온라인 거래와 지점 방문을 병행하는 비율은 22%, 지점 방문으로만 거래하는 비율은 70%이다. 청장년층의 54%가 온라인 거래만을 이용하는 것과는 상반되는 풍경이다. 지점 방문 시 지불하는 수수료의 차이도 크다. 고령층이 지점 방문을 통해 지불하는 수수료는 연 2만 4,600원. 청장년층이 내는 1만 2,200원의 두 배를 웃돈다. 앱으로 방문 예약을 미리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고령층의 창구 대기시간도 청장년층보다 긴 편인데, 그나마 고령층에게 익숙한 ATM 기기는 매해 줄어들고 있다. 2021년 한국은행의 모바일 금융서비스 이용행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70대 이상 응답자 중에서 최근 3개월 이내에 모바일뱅킹 서비스를 이용한 비율은 6.3%로, 30대 87.2%, 40대 76.2%의 응답 비율과 매우 상반된다.
핀테크의 부상으로 모바일 간편 결제 시스템이 활발해졌지만,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것도 고령층이다. 카드 사용에도 익숙하지 않아 고령층이 현금 결제를 거부당하는 일도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요즘, 핀테크 스타트업의 편리하고 비용까지 적은 서비스는 고령자에겐 언감생심이다. 디지털 문해력이 현저히 낮은 이들에겐 디지털 플랫폼에서 금융 거래 내역을 확인하고 간단한 입출금을 처리하거나 공과금을 납부하는 일조차 어려운데, 보이스피싱 같은 사기 피해에 노출될 위험은 클 수밖에 없다.
미국의 핀테크 스타트업 에버세이프EverSafe는 고령자가 의심스러운 거래에 경각심을 가지도록 알림을 보내거나 청구 만기일을 알려주는 디지털 플랫폼을 제공한다. 금융 사기 방지와 금융 모니터링을 목표로, 고령층이 사용하기 쉽도록 설계한 플랫폼이다. 미국은퇴자협회American Association of Retired Persons, AARP라는 비영리 기관은 고령층의 디지털 문해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다양한 서비스와 리소스를 제공한다. 특히 금융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여 디지털 시대의 금융 개념을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자산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한다. JP모건 체이스JPMorgan Chase 역시 고령층이 디지털 뱅킹 서비스 사용법을 익히고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테크 커넥트Tech Connect라는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온라인 자료는 물론 대면 강의와 워크숍을 제공하며, 온라인 뱅킹, 모바일 결제, 자산 관리 앱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우리나라에서도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손을 잡고 ‘고령화 친화적 모바일 금융앱 가이드라인’을 신설했지만 이 개선 방안이 실제 사용자에게 닿기까지 얼마나 더 오랜 시간이 소요될지는 알 수가 없다. 관공서나 공공 기관에서의 업무도 마찬가지다. 주민등록등본을 발급받을 때 주민센터를 방문하면 400원을 내야 하지만 온라인에서 처리하면 무료다. 이러한 서비스를 대행할 수 있는 정부의 웹사이트 민원24 활용법을 고령자에게 친숙한 언어로 설명해주는 실효성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디지털 문해력 #초고령사회 #UX리서치 #시니어접근성 #시니어트렌드
미션잇은 신체, 감각, 인지 활동 지원이 필요한 사용자 누구나 더 안전하고 편리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디자인을 연구하고, 이를 기반으로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 포용성을 높일 수 있는 전략을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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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가 고대 중국 뤄양에서 발명된 이후 실크로드를 지나 유럽에 다다르기까지 걸린 세월은 약 천 년. 이 경이로운 문물은 스무 세기 동안 글, 때로는 그림을 담고 인류의 물질적 정신적 풍요를 끌어냈다. 이 오랜 시간이 무색하리만큼 빠르게 종이를 대체하는 신문물이 있다. 바로 디지털 매체이다.
개인용 컴퓨터의 발명과 PC의 보급, 인터넷 시대의 도래, 스마트폰의 등장. 굵직한 사건만 따져도 디지털 세상의 나이는 겨우 49세다(개인용 컴퓨터는 1974년 미국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해, 종이 없는 세상을 선언한 것도 불과 12년 전이다. 그리고 2020년, 예기치 못한 팬데믹의 발발은 디지털 전환이라는 대변화의 속도를 더욱 앞당겼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이름으로 시행된 사상 초유의 조치, 외부 세상과의 단절은 디지털을 유일한 희망처럼 비췄다. 생사와 직결될지도 모르는 모든 중요한 정보는 디지털 매체를 타고 전파됐다.
단절된 것은 오프라인 세상만이 아니었다. 이미 경제활동의 전선에서 밀려난 고령층은 디지털 세상에서 또다시 소외되기 시작했다. ‘노인세’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오프라인 대면 서비스 이용 시 발생하는 비용이 디지털 비대면 서비스보다 높을 수밖에 없는데, 고령층에겐 디지털 장벽이 높아 이를 피할 수 없는 세금처럼 치러야 한다는 의미다. 관공서 방문 후 문서 발급 비용이나 금융기관 방문 이용 시 발생하는 수수료가 대표적인 경우다. 생필품, 식료품을 구입할 때 다양한 할인 혜택이나 간편한 배송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곳도 디지털 세상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디지털 정보화에 취약한 고령층은 다른 세대에 비해 고스란히 손해를 떠안는 셈이다. 2020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실시한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정보취약계층 중에서도 고령층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이 가장 낮다. 100% 디지털 전환이 머지않은 지금, 고령층의 디지털 소외를 막고 이들을 디지털 세상의 중심 무대로 안내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다.
글 이서이, MSV 객원 에디터
일러스트 김성미, 미션잇 UX리서처
디지털 문해력이란?
디지털 문해력Digital Literacy은 1997년 폴 길스터Paul Gilster가 저서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다. 전통적인 개념의 문해력이 읽고 쓰는 능력을 의미한다면, 디지털 문해력은 문제 해결을 위해 디지털 도구를 활용하며 다양한 유형의 정보를 이해하고 사용하는 능력을 일컫는다. 이전까지 글로 전해지는 지식을 얼마나 잘 습득할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면, 디지털 세상에서는 그 이상의 능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디지털리터러시교육협회에서는 디지털 문해력을 “디지털 기술과 미디어를 활용하여 디지털 데이터, 정보, 콘텐츠를 탐색, 소비, 분석, 활용, 관리, 생산하고, 건강한 디지털 시민으로서 지혜롭게 소통하고 관계를 맺으며, 개인과 사회의 발전을 균형 있게 도모하는 역량”으로 정의한다. 주어진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다루고 해석하고 가공하는 동시에 무수히 많은 디지털 정보 사이에서 허위 정보를 판별하여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까지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유네스코UNESCO, 국제연합UN 같은 국제기관 역시 디지털 문해력을 정의하며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디지털 환경의 범위가 넓은 만큼, 디지털 문해력의 하위 영역도 무척 다양하다. 기본적으로 텍스트와 시각 자료, 동영상 등의 다양한 미디어를 복합적으로 구성하는 능력을 바탕으로, 디지털 도구와 플랫폼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능력 그리고 정보를 탐색하고 소통하고 협력하는 능력까지 넓은 범위를 아우른다. 분야 혹은 매체 유형에 따라 기술 문해력, 코드 문해력, 미디어 문해력, 뉴스 문해력, 소셜 미디어 문해력 등으로 나뉘기도 한다. 공통으로 지목되는 디지털 문해력의 핵심은 자기 주도적 정보 활용을 통한 문제 해결 능력이다. 이에 디지털 문해력은 디지털 역량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이제는 세대를 불문하고 모든 연령, 모든 분야의 노동자, 기업가가 디지털 환경에 적응해 나가며 새로운 역량을 갈고닦아야만 한다. 미국에서는 2014년 인력혁신 기회법Workforce Innovation and Opportunity. Act: WIOA; 공법 113-128이 발효되었는데, 여기서도 디지털 문해력을 노동자의 기본 기술로 다루고 있다. 급변하는 디지털 세상에서 디지털 문해력에 따른 정보 격차가 전 세계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50년 65세 이상의 고령 인구는 우리나라 인구의 40%, 가구로는 절반을 차지할 전망이다. 고령층은 혼자 거주하는 경우도 많고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에 취약하다.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연령대별 고립의 격차가 가장 높아 고령층의 사회적 고립과 고독 문제는 심각한 편이다. 아셈노인인권정책센터에서는 고령층의 사회적 고립을 완화하기 위해 인지행동치료, 사회기술훈련, 친구 맺기 같은 대면 또는 디지털 개입이 필요하며, 교통, 디지털 포용, 건축 환경 등의 인프라 개선과 고령 친화적인 지역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권고한다.
01
생과 사를 가르는 정보 전쟁
보건, 의료
팬데믹이 시작된 직후 우리 사회는 마스크 대란을 겪었다.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는 마스크 수급 안정화 대책을 내놓으며 마스크 5부제를 시행했다. 약국마다 마스크를 사기 위한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섰고 한참을 기다렸다 재고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허탕을 치기 일쑤였다. 정부는 공익을 위해 공적 마스크 재고 데이터를 공개했다. 발 빠른 이들은 약국별 재고 정보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앱을 내놓기도 했다. 모두가 이 영특한 세상을 극찬했고, 약국까지 헛걸음하는 수고를 덜 수 있었다. 고령층을 제외하고 말이다.
2020년 10월 충북에서는 도내 65세 이상 노인 705명을 대상으로 마스크 정보 격차에 대해 조사를 실시했다. 공적 마스크 구입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70.4%인 반면, 앱을 통한 마스크 구입 경험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이 79.6%나 됐다. 마스크 구입뿐 아니라, 전례 없는 전염병에 관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발병 사례, 전파 방식, 정부 지침, 예방법, 치료법 등 모든 정보가 인터넷에서 신속하게 오고 갔다. 심지어 정부에서도 새로운 발표를 내놓을 때도 업데이트가 빠르고 간편한 디지털 플랫폼을 최우선 매체로 간주했다. 어디서 어떤 정보를 봐야 하는지 알 도리가 없는 고령층, 특히 1인 가구는 TV를 통해 한발늦게 전파되는, 선별된 정보만을 기다려야 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위해 온라인 예약을 실시하자 고령층의 디지털 문해력 문제는 더 심각하게 대두되었다. 온라인 사전 예약을 하려면 앱이나 웹사이트에서 본인 인증부터 거쳐야 한다. 디지털 언어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도 의료 기관 목록과 예약 가능한 시간을 조회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고령층은 이 낯선 유저 인터페이스를 겨우 뚫고선 치열한 경쟁 속에 내던져져야 했다.
2014년 미국에서 창립된 리봉고Livongo는 고령층이 주로 앓는 만성 질환에 특화된 디지털 건강 플랫폼을 제공한다. 환자에게 혈당계 같은 디지털 디바이스가 포함된 개인화된 웰컴 키트를 보내주고, 디바이스와 모바일 앱을 처음 사용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지원한다. 1:1 코치를 배치하여 사용자가 시스템에 적응하는 일을 돕고, 사용자 친화적으로 설계된 모바일 앱, 다양한 형식으로 제공되는 교육 자료도 디지털 문해력이 낮은 사람들을 고려한 것이다. 당뇨, 고혈압 등 만성 질환을 앓는 고령층은 리봉고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해 건강을 모니터링하고 AI 기반의 원격 맞춤형 코칭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디지털 문해력을 위한 별도의 교육 없이도, 좋은 고객 경험을 구축함으로써 고령층의 디지털 웰빙을 끌어 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의약품이나 영양제에 관한 정보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세상에서는 의약품 정보가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재가공되어 넘쳐흐르지만 고령층에겐 TV나 지인끼리 주고받는 한정된 정보가 전부다. 디지털 기기에 그나마 익숙한 고령자의 경우 과장되었거나 잘못된 건강 정보에 노출되어 피해를 보기도 한다. 단순히 디지털 기기 사용법을 익히는 것뿐 아니라 디지털 생태계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도와 주의 깊은 판단 능력이 필요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02
대면은 ₩원, 비대면은 0원
금융, 관공서
현금만 주고받는 시대는 지났다. 은행 계좌 운용과 카드 사용은 필수가 됐다. 노동에 대한 대가를 지급받는 것도, 어떠한 거래로 송금을 받는 것도 은행 계좌를 통해 이뤄진다. 디지털화가 급속도로 일어나면서, 금융 거래를 위해 은행을 방문하는 비율은 월등히 감소했다. 모바일 뱅킹이면 거의 모든 금융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덕분이다. 물론 인터넷 환경은 물론 모바일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자는 예외다. 통계청에 따르면 65세 이상의 고령층이 온라인 금융거래만 이용하는 비율은 8%, 온라인 거래와 지점 방문을 병행하는 비율은 22%, 지점 방문으로만 거래하는 비율은 70%이다. 청장년층의 54%가 온라인 거래만을 이용하는 것과는 상반되는 풍경이다. 지점 방문 시 지불하는 수수료의 차이도 크다. 고령층이 지점 방문을 통해 지불하는 수수료는 연 2만 4,600원. 청장년층이 내는 1만 2,200원의 두 배를 웃돈다. 앱으로 방문 예약을 미리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고령층의 창구 대기시간도 청장년층보다 긴 편인데, 그나마 고령층에게 익숙한 ATM 기기는 매해 줄어들고 있다. 2021년 한국은행의 모바일 금융서비스 이용행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70대 이상 응답자 중에서 최근 3개월 이내에 모바일뱅킹 서비스를 이용한 비율은 6.3%로, 30대 87.2%, 40대 76.2%의 응답 비율과 매우 상반된다.
핀테크의 부상으로 모바일 간편 결제 시스템이 활발해졌지만,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것도 고령층이다. 카드 사용에도 익숙하지 않아 고령층이 현금 결제를 거부당하는 일도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요즘, 핀테크 스타트업의 편리하고 비용까지 적은 서비스는 고령자에겐 언감생심이다. 디지털 문해력이 현저히 낮은 이들에겐 디지털 플랫폼에서 금융 거래 내역을 확인하고 간단한 입출금을 처리하거나 공과금을 납부하는 일조차 어려운데, 보이스피싱 같은 사기 피해에 노출될 위험은 클 수밖에 없다.
미국의 핀테크 스타트업 에버세이프EverSafe는 고령자가 의심스러운 거래에 경각심을 가지도록 알림을 보내거나 청구 만기일을 알려주는 디지털 플랫폼을 제공한다. 금융 사기 방지와 금융 모니터링을 목표로, 고령층이 사용하기 쉽도록 설계한 플랫폼이다. 미국은퇴자협회American Association of Retired Persons, AARP라는 비영리 기관은 고령층의 디지털 문해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다양한 서비스와 리소스를 제공한다. 특히 금융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여 디지털 시대의 금융 개념을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자산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한다. JP모건 체이스JPMorgan Chase 역시 고령층이 디지털 뱅킹 서비스 사용법을 익히고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테크 커넥트Tech Connect라는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온라인 자료는 물론 대면 강의와 워크숍을 제공하며, 온라인 뱅킹, 모바일 결제, 자산 관리 앱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우리나라에서도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손을 잡고 ‘고령화 친화적 모바일 금융앱 가이드라인’을 신설했지만 이 개선 방안이 실제 사용자에게 닿기까지 얼마나 더 오랜 시간이 소요될지는 알 수가 없다. 관공서나 공공 기관에서의 업무도 마찬가지다. 주민등록등본을 발급받을 때 주민센터를 방문하면 400원을 내야 하지만 온라인에서 처리하면 무료다. 이러한 서비스를 대행할 수 있는 정부의 웹사이트 민원24 활용법을 고령자에게 친숙한 언어로 설명해주는 실효성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디지털 문해력 #초고령사회 #UX리서치 #시니어접근성 #시니어트렌드
미션잇은 신체, 감각, 인지 활동 지원이 필요한 사용자 누구나 더 안전하고 편리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디자인을 연구하고, 이를 기반으로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 포용성을 높일 수 있는 전략을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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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가치를 만나는 MSV 임팩트레터에서는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에서 다루고 있는 핵심적인 주제들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인사이트를 전달 드립니다. 핵심적인 키워드는 '디자인의 사회적 가치 Design for Social Value'와 '포용적인 디자인 Inclusive Design' 그리고 '접근성Accessibility'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