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v 임팩트 레터 no.61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존엄하게 : 네덜란드 호그벡 마을


중앙치매센터 통계[1]에 따르면 2018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65세 이상 고령자 인구 중 약 75만 명이 인지저하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국내 인지저하증 환자 수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2024년에는 100만명, 2039년에는 2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되고 있죠. 중증 인지저하증 환자의 경우 24시간 돌봄이 필요하여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 누워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실종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낯선 시설에 갇혀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기억력과 판단력이 손상되어 일상을 살아가는 데 어려움을 겪고, 때로는 불안과 혼란을 경험하여 공격적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1992년, 이들의 일상을 목격했던 네덜란드 요양원의 한 간호사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인지저하증 환자들도 존엄한 노후와 독립적인 생활, 그리고 평범한 일상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2009년에 네덜란드 호그벡 마을The Hogeweyk이 문을 열었습니다. 돌봄의 미래를 제시하는 세계적인 모델이라 불리는 곳, 호그벡 마을의 이야기를 소개해드립니다.

*'치매'라는 단어는 어리석을 '치(癡)'와 어리석을 '매(呆)'가 결합된 한자어로, '어리석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션잇은 '치매' 대신 '인지저하증'이라는 의학용어를 사용합니다.

강성혜, 미션잇 리서처




행복을 꿈꾸는 호그벡 마을


호그벡은 네덜란드 베이스프Weesp 도시에 위치한 중증 인지저하증 환자를 위한 마을이다. 멀리서 보면 호그벡 마을의 모습은 일반 마을과 다를 바 없다. 이곳 주민들은 마을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거나,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가족과 지인을 만나 여유를 즐긴다. 마을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고, 동아리 회원들과 함께 클래식 음악을 듣기도 한다. 마을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광장에는 작은 콘서트가 종종 열리며, 광장 분수대 앞에 앉아 햇빛을 쬐는 입주민들의 모습도 매일 볼 수 있다. 린덴바움 나무가 심겨진 길목을 지나 한참을 걷다보면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공원과 연못이 펼쳐진다.


(상) 호그벡 광장 앞 분수대에서 입주민들이 쉬고있는 모습. (하) 입주민들은 호그벡 슈퍼마켓에서 직접 장을 보기도 한다.
©Be Advice / De Hogeweyk / Vivium Zorggroep




가장 평범한 일상의 회복


호그벡의 비전은 인지저하증 환자에게 가장 평범한 일상을 돌려주자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호그벡 마을의 공동 설립자들은 인지저하증 환자들이 폐쇄된 병동이 아닌,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더 행복할 것이라고 믿었다. 오늘날 호그벡 마을은 188명의 중증 인지저하증 환자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층이 낮고 아늑한 27개의 네덜란드식 주택은 입주민의 취향에 따라 4가지 스타일로 나뉜다. 전통적인 네덜란드 스타일, 코스모폴리탄 스타일 등 입주민들이 살아온 환경과 가장 비슷한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 가구와 벽지, 식기 모양과 음악까지 세심한 차이를 두었다. 집집마다 6, 7명의 어르신과 간병인이 함께 지내며 평범한 가정집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침대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요양원 다인실과 달리, 호그벡의 집들은 거실, 주방, 개인 침실, 세탁실 등의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다. 요리나 세탁 등의 집안일은 주로 간병인이 담당하지만, 어르신들은 밥 짓는 냄새를 맡고, 세탁기가 조용히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에 와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호그벡에서 제공하는 4가지 인테리어 스타일 중 '전통적인 네덜란드 스타일'의 집. 벽에는 네덜란드 전통 그림이 걸려있다. 
호그벡은 국가 예산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입주민들은 최소 비용으로 시설을 이용할 수 있으며, 나머지 생활 필수품은 국민 연금으로 구입한다. 
©Be Advice / De Hogeweyk / Vivium Zorggroep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존엄하고 아름답게


‘환자가 아닌, 사람이 중심인 곳’. 이것이 호그벡의 핵심 철학이다. 호그벡에서는 ‘음악 치료’라는 말 대신 ‘음악을 즐긴다’라는 말을, ‘병동’ 대신 ‘집’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환자복을 입은 입주민은 찾아볼 수 없으며, 간병인도 흰 가운을 입지 않는다. 70년대부터 표준이라 여겨졌던 의료서비스 위주의 전통적인 모델에서 벗어나, 인지저하증 환자도 가장 평범한 일상을 주도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을 고민하고 있다. 나이나 건강 상태에 상관없이 누구나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호그벡 마을은 오늘도 나이 듦과 돌봄에 대한 관점을 변화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돌봄 서비스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호그벡은 돌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Be Advice / De Hogeweyk / Vivium Zorggroep




호그벡 마을의 공동 설립자
일로이 반 할Eloy van Hal과 진행한 인터뷰 일부를 소개합니다.


MSV : 호그벡 마을은 인테리어부터 음악까지, 작은 요소들을 세심하게 신경 쓰셨다는 느낌이 드네요.

일로이 반 할 : 저희 디자인의 핵심은 ‘가장 평범한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어요. 호그벡에서 말하는 평범한 디자인이란, 현관문이 달린 네덜란드식 주택이에요. 아파트가 아닌 이상 네덜란드의 집들은문을 열면 바로 바깥으로 나갈 수 있도록 설계되었어요. 외부와 바로 연결된 현관문이 요양시설에 있다는 건 사실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죠. 사람들은 인지저하증 환자들이 너무 연약해서 집 안에만 있으려고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호그벡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외부 활동을 하며 하루를 보내요. 주택 내부는 개인 공간과 공용 공간으로 나눠져 있는데, 이것도 네덜란드 사람들의 문화를 반영한 디자인이에요. 방문객이 개인 공간을 함부로 들여다볼 수 없게 설계한 거죠. 기존의 요양시설은 이런 작은 디자인 요소를 놓친 경우가 많았어요. 누군가 내 안방을 마음대로 드나든다면, 그건 그 사람의 입장에서 평범한 디자인이 아닌 거죠. 쉬운 일일 것 같지만 많은 고민이 필요했던 부분입니다.


MSV : 외부 공간도 궁금하네요. 마을에 편의시설이 있다는 점이 정말 특별한 것 같아요.

일로이 반 할 : 사실 20년 전에 광장 분수대를 처음 설계했을 때는 다들 미쳤다고 했어요 (웃음). 요양원에 이렇게 위험한 시설을 둘 수 없다고요. 인지저하증 환자들이 자기가 어디 와 있는지 모르고 분수대에 뛰어들 거라고 했죠.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정관념이에요. 디자인에 조금만 신경쓴다면 안전하고도 평범한 공간을 충분히 구현할 수 있는데 말이에요.


MSV : 호그벡 마을이 국제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일로이 반 할 :호그벡은 인지저하증 환자를 위한 요양시설이지만, 호그벡 사례를 통해 장애가 있는 사람이나, 어떤 이유로든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까지 궁극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어요. 삶의 마지막 몇 달, 몇 년을 잘 보내는 일이 수명을 연장하는 일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호그벡은 나이나 건강에 상관없이 누구든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주도해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죠. 삶과 죽음, 돌봄에 대한 생각은 문화나 가치관에 따라 각자 다르기 때문에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더 좋다고 강요하고 싶진 않아요. 하지만 전통적인 돌봄의 모델에서 벗어나,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유를누릴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느 문화권에서든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는 문제인만큼 함께 직면하고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치매 #인지저하증 #네덜란드 #호그벡 #치매마을




* 참고

[1] 중앙치매센터. (2018). 전국 치매환자 유병현황자료.




MSV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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