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v. letter] no.45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안전한 학교 디자인



Meet Social Value, 사회적 가치를 만나는
MSV 뉴스레터에서는
'디자인의 사회적 가치'와 '포용적인 디자인'
그리고 '접근성'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다룹니다.




셉테드CPTED 라는 말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범죄 예방 환경설계 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 의 약어로 영어 표현 그대로 범죄를 예방하는 디자인을 일컫습니다. 하지만 단순하게 생각하면 CCTV나 경보장치와 같은 보안 설비를 최대한 많이 설치하는 것이 범죄를 예방하는 설계라고 여길수도 있는데요. 오늘 소개할 인터뷰이인 르네번트는 많은 보안 장치는 오히려 공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불편한 감정을 심기 때문에 자연스럽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가 생각하는 안전한 공간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어떤 설비가 아니라 사람들이 몸 담고 있는 커뮤니티 내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휴가 전날 시간을 내어 열정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했던 르네 번트와의 인터뷰가 생생하게 기억나네요. 아래에서 그 일부분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본 내용은 MSV 소셜 임팩트 시리즈 4호 <안전>
생활안전부터 재난까지 안전을 위한 디자인에서
일부분을 발췌하였습니다.


에디터 강성혜, 김병수
사진제공 Mahlum Architects, Arthur Ross, Jeremy Bittermann




르네 번트는 메힐럼 건축사무소에서 학교 디자인 전문가로 일하고 있으며 국제셉테드협회ICA(International CPTED Association) 미국 이사장으로 재직중이다. 최근 ICA 가이드북 <학교와 셉테드 : 통합적 접근>을 공저했으며 셉테드42 3세대 가이드라인을 학교 디자인에 접목해 안전한 학습 공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그가 생각하는 안전이란 인위적인 장치가 아닌 커뮤니티와 일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셉테드라 하면 방범용 CCTV 등의 보안장치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설계를 셉테드라고 볼 수 있을까요?

셉테드 3세대 가이드라인은 물리적인 환경부터 심리정서적 환경까지 통합적으로 다루고 있어요. 하지만 아직 전세계적으로 잘못 적용된 경우가 많아요. 미국도 예외는 아니죠. 셉테드는 철조망이나 금속탐지기 같은 보안장치 차원의 개념이 아닙니다. 연구에 따르면 이런 인위적인 보안시설은 오히려 학습을 방해한다고 해요. 학교 곳곳에 규제 장치가 너무 많아서 학생들의 커뮤니티 형성을 방해하는 거죠.


셉테드에서 정의하는 안전이란 어떤 것인가요?

셉테드는 오히려 안전이라는 목표를 자연스럽게 접근해요. 안전이란, 이웃과 더불어 사는 커뮤니티와 일상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죠. 낮이든 밤이든 사람들이 안심하고 활보할 수 있는 거리가 바로 안전한 거리입니다. 길을 따라 카페와 작은 가게가 있는 활기찬 공간 말이에요.


셉테드 디자인을 중점적으로 다루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의 책 《위대한 미국 도시들의 탄생과 죽음The Death and Life of Great American Cities》을 읽고 셉테드를 처음 접하게 됐어요. ‘안전한 공간은 인간의 경험에서 시작된다’라는 구절이 인상 깊었죠. 셉테드 철학의 핵심을 정확하게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해요. 디자인의 중심은 인간의 경험이 되어야 합니다. 이건 제가 셉테드를 알기 전부터 오랫동안 노력해온 부분이에요. 제가 농담처럼 하는 말이 있어요. 학생식당을 디자인할 때 ‘나 라면 여기서 돈을 내고 밥을 먹을까?’ 스스로 질문해 보는 거예요. 아이들이 매일 식사하는 곳은 일반 레스토랑이나 카페와 다름없이 아름다워야 합니다. 빛, 적절한 소재와 따뜻한 분위기. 이 모든 것이 심리와 정서에 영향을 주잖아요? 결국 안전과 연결되는 요소들이고요.




학교 앞에 설치된 바위는 자연스러운 보안장치 역할을 한다. 외부 침입자가 순식간에 정문까지 도착하지 못하도록 차량 출입을 통제하는 일종의 보호 기둥이다. 아이들의 쉼터가 되기도 한다.


학습환경이 학생들의 정서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다면 안전한 학교란 어떤 학교인가요?

안전은 커뮤니티 참여에서 시작됩니다. 학교 폭력의 원인이 환경뿐만 아니라 소통의 부재에 있는 경우가 많아요. 학생들이 처음 문제행동을 보일 때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선생님이 분명 있어요. 문제 발생 초기에 다른 교사들과 상황을 공유할 수만 있었더라면 과거의 수많은 참사를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을 거예요. 그래서 메힐럼이 지은 학교에는 교직원 전용 라운지가 있어요. 교사, 교내 상담사, 행정 직원까지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아름답고 편안한 공간이죠.



안전은 소통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인상적이네요.

진정한 의미의 안전은 개방된 공간에서 실현돼요. 유리창문으로 서로를 보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 즉 환경의 투명성에 달려있죠. 어떤 학생들에게는 복도를 혼자 걸어가는 일조차 무서울 수 있어요. 학교폭력은 대부분 지켜보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발생하니까요. 저희가 설계한 학교는 모두 교실과 복도가 시각적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모든 공간이 누군가의 시야에 있으니 폭력적인 행동을 하거나 학교 기물을 파손하는 학생이 없어졌어요. 지켜보는 눈이 많기 때문이죠.

셉테드 3세대 가이드라인에서 말하는 내부 위협internal threat이란 어떤 것이 있나요?

학생들이 매일 마주하는 현실은 학교 폭력과 따돌림입니다. 아이들에게는 총기사고보다 이런 내부적인 위협이 일상인 거죠. 사람들이 메힐럼이 디자인한 학교를 볼 때 가장 먼저 의문을 제기하는 부분이 유리로 제작한 투명한 공간이에요. “세상에, 창문이 왜 이렇게 많아요?” 라고 질문하죠. 총기사고를 걱정해서 아이들을 더 꽁꽁 숨겨야 한다는 거예요. 하지만 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경험하는 위험은 훨씬 다양해요. 외부 위협부터 내부 위협까지 안전의 스펙트럼을 폭넓게 고려해야 합니다. 셉테드 3세대 가이드라인에는 자살위험, 거식증, 마약도 포함돼요. 학생들이 스스로에게 끼치는 위협인 거죠. 관점을 바꿔야 합니다. 총기사고 이야기만 할 게 아니라요.




넓은 창은 아이들이 길을 찾아가기에 유용하면서 교내 폭력을 예방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셉테드 3세대 가이드라인에서 강조하는 자연적 감시가 가능한 것이다.


셉테드 3세대 원칙이 학생들의 주인의식을 강조한다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학교 시설에 대한 위협도 셉테드 3세대 안전 카테고리에 포함됩니다. 학생들이 건물을 의도적으로 훼손하는 경우죠. 그래서 학교를 지을 때 아이들이 직접 페인트의 마지막 겹을 칠하게 하거나 벽에 그림을 그리라고 하기도 해요. 이 과정을 거치면 학생들이 학교를 보호하는 수호자가 됩니다. 시설을 파괴하려는 충동도 자연스럽게 사라지더군요. 이때 만큼은 디자이너가 “좋아, 이 부분은 너희에게 맡길게” 하고 한 걸음 물러서는 거죠.


학생들의 주도적인 선택을 존중한다는 점이 신선하게 들리네요.

아이들이 직접 만들어갈 수 있는 학교가 안전한 학교에요. 가끔 복도의 화분을 학생들이 가꾸게 하는데요. “네가 잘 돌봐줘야 해” 라고 할 일을 주면 자연스럽게 학교에 관심을 갖게 돼요. 학교라는 공간이 주는 편안함에 내가 직접 기여하는 거죠. 학교가 또 하나의 집이 되는 거예요. 학생들에게 책임감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요.


한국의 학교들은 미국보다 상대적으로 면적이 작습니다. 넓은 쉼터를 넣기 어려운 곳도 있을텐데요.

협소한 공간이라도 자연의 요소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어요. 한번은 호주에서 20층짜리 고층 건물에 유아교육 시설을 디자인한 적이 있습니다. 좁은 공간이었지만 내부에 곡선 형태의 토포그래피topography46를 설치해서 야외 공간의 느낌을 연출했죠. 한 프로젝트에는 홀트리 스트럭처스WholeTrees Structures 라는 목재 가공 회사의 제품을 사용했어요. 공사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베어야 하는 나무를 다시 건축자재로 제작해주는 곳입니다. 잘려나간 나무는 지붕 구조를 지탱하는 기둥이 되어 건물 안에서 쭉 함께 살아가죠. 지속가능한 대안이면서도 실내공간에 자연을 도입할 수 있는 아름다운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MSV 소셜 임팩트 시리즈 4호 <안전> 

정식으로 발간되었습니다.




강성혜 미션잇 리서처

영국 옥스퍼드 대학원에서 사회정책을 공부하고 공공기관에서 근무했던 강성혜는 논문으로는 알 수 없었던 실제 사회 곳곳의 목소리를 듣고자 미션잇에서 리서처 겸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지금까지 전혀 몰랐던 세상을 알게되는 순간들을 꽤나 자주 마주하고 있다.


김병수 미션잇 대표

사회적으로 시선이 닿지 않는 부분들까지 디자인을 통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신념으로 미션잇을 운영하고 있다.삼성전자에서 제품 디자이너로 일했으며,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원에서 사회적기업가정신을 공부했다. 현대 사회 문제를 디자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MSV를 발행하며 시선의 변화를 이끌어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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