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v 임팩트레터 no.67 고령 사용자를 위한 제품과 공간은 어떤 모습을 지향해야할까?

매 호 MSV 시리즈를 기획할 때마다 생각의 전환점을 갖게 됩니다. 이번 5호 기획의 초점은 시니어 세대의 디지털 접근성이었습니다. ‘디지털 사회에서 디지털 기기를 누구나 잘 사용해야 불편하지 않으니까. 접근성 좋은 인터페이스 디자인을 어떻게 만들수 있을지 연구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어르신들을 만나고, 전문가들을 인터뷰했습니다. 하지만 인터뷰를 거듭할수록 우리가 고연령 세대에게 생각보다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고, 아는 것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고령화가 중요한 사회 문제다.’라고만 생각했지, 고령 세대가 가지고 있는 내적인 갈망에 대해서는 심도 있게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이죠.


인생의 막바지에 있다 하더라도, 삶에서 일어나는 것들로부터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동일합니다. 치매 어르신들도 인생의 마지막까지 일에 대한 기쁨이 있습니다. 살아왔던 방식대로 여전히 빨래를 개고, 잡초를 뽑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합니다. 미션잇 AgeLab은 열 두 분의 60대 이상 인터뷰이들에게 '나이듦' 속에서 얻게 되는 깨달음과, 내면 심리에 대해 진솔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난 호에서는 고령자의 디지털 접근성을 높여줄 디자인을 소개해드렸는데요. 이번 주는 고령자의 삶에 행복을 더해 줄 공간과 제품 디자인 인사이트를 보내드립니다. 아래 글은 MSV 5호 <시니어>에 수록된 내용 중 일부입니다. 

김병수, 미션잇 대표
강성혜, 미션잇 리서처




01
"내가 살아왔던 그대로"
편안함을 위해 노멀을 디자인한다


고연령 사용자가 살아온 삶의 방식과 유사한 디자인이 결국 가장 편안한 디자인이다. 치매 어르신들이 요양시설에 있을 때 심리적인 위축과 불안감을 경험하는 이유도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 사이에서 일상을 이어가는 일이 이전과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고령자가 거주지를 이동하여 시설에 입소할 때 느끼는 감정은 ‘이동 쇼크relocation shock’, ’이동 스트레스증후군relocation stress syndrome’이라고도 불린다 .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어르신들은 불안증과 우울증, 혼돈뿐만 아니라 불면, 식용저하, 무기력 등의 신체적인 변화도 경험하는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 네덜란드 호그벡 치매 마을에서는 이를 고려해 어르신들에게 익숙한 라이프스타일을 4가지로 구분해 마을 내부를 구성했고 치매 환자들이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호그벡에서 제공하는 4가지 인테리어 스타일 중 '전통적인 네덜란드 스타일'의 집. 벽에는 네덜란드 전통 그림이 걸려있다.
©Vivium Zorggroep


물론 배우면 분명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디지털 기기 사용에 두려운 마음이 많이 들어요. 뭐든 새롭게 다시 적응하는 데 적응속도가 예전 같지 않거든요.”
- 조완순 님 (71세)


“내가 정말 필요한 것 같으면 다시 매뉴얼 보고 해결하려고 하죠. 그런데 혼자 하게 되면 같은 문제 상황에 다시 처할 가능성이 높다는게 문제죠. 하다보면 또 실수하니까 짜증도 나고 조급해서 서두르게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결국은 또 스스로 찾아서 해야 하니까 그 과정 자체가 참 힘듭니다. 실수를 두 번 세 번 하게 되면 하루 종일 시간 중에서 아주 귀중한 부분을 놓치기 때문에 반복적인 실수는 피하고 싶은 부분입니다.”
- 신충식 님 (64세)





02
"사는 곳은 가장 익숙한 곳이어야 해요."
내 집에서 나이 들기


미국 질병통제센터에 따르면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란, 나이가 든 이후에도 요양시설로 거처를 옮기지 않고 가정과 지역 사회에서 연령, 소득 또는 능력 수준에 관계없이 안전하고 독립적이며 편안하게 살아가는 일을 말한다. 실제로 2018년 서울시 실태조사 결과 응답자 중 86.3%는 건강이 유지될 경우 ‘현재 거주하는 집’에 계속 거주하고 싶다고 답했으며, 거동이 불편해질 경우 ‘재가 서비스를 받더라도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고 답하였다. ‘거주환경이 더 좋은 집으로 이사하고 싶다’, ‘식사 및 생활편의 서비스 등이 제공되는 시설에 거주하고 싶다’고 답한 비율은 각각 7.2%, 6.4%에 그쳤다. 최근 낙상 감지, 일상 모니터링, 온라인 의료 서비스 등과 관련된 기술 보급이 확대됨에 따라 요양시설이 아닌 내 집에서 여생을 보내는 일이 점점 현실화되고 있다. 다만 대도시에는 의료, 복지, 커뮤니티가 잘 갖춰진 반면 읍면부에서는 기반 시설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고연령층의 삶의 질이 낮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내 집에서 나이 드는 일에도 지역에 따른 편차가 생기지 않도록 기반시설 접근성 확보가 중요한 과제이다.

©Scott Webb


지인의 자녀가 어머니를 미국으로 모시고 왔는데 어머니가 치매에 걸려버린 거예요. 왜 그렇겠어요? 미국에서는 말도 안 통하고, 갈 곳도 없고, 자식들은 낮에 모두 직장 가 있잖아요. 혼자 집에 있으니 결국 병이 온 거죠. 그러니까 사는 곳이 익숙한 곳이어야 하는 거예요. ”

- 박선복 님 (71세)

 

“아는 분이 단독주택에 살면서 아직도 재래식 화장실을 이용해요. 자녀들이 이사를 가자고 해도 절대 이사를 안 가시는 거예요. 저도 아파트 생활해 보니까 회의감이 드는 것 같아요. 엘리베이터에서 서로 인사도 안 하고 좀 삭막하죠. 언젠가는 제가 어릴 때 살았던 독립된 공간으로 이사해서 강아지도 키우고, 꽃나무도 키우고 싶습니다.”

- 신용도 님 (63세)




03
“남의 손은 빌리고 싶지 않아요”
독립적인 활동을 도와주는 제품과 공간


나이가 들면서 자존감이 가장 낮아지는 때는 일상 생활에서도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시기이다. 통상적으로 65세 이상부터 75세 미만의 노인을 ‘전기노인’으로 분류하고, 75세 이상의 노인을 ‘후기노인’으로 분류한다. 후기노인은 만성 질환과 일상생활수행능력 저하로 인해 심리적인 좌절을 자주 경험한다 . 특히 식사, 화장실 사용, 수면 등 매일 당연하게 하던 활동을 타인에게 의존하여 수행하게 될 때 우울감이 찾아온다. 고령 사용자의 독립적인 생활을 돕는 디자인이 필요한 이유이다. 특히 화장실과 같은 생리적인 욕구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야한다.

©De an Sun


주변에 굉장히 정정하고 말을 잘하시던 할머니가 계신데, 다치고 나서 손을 덜덜 떠시고 말이 약간 어눌해 졌어요. 제가 도움을 드리려고 하면 아예 숨어 버리시더라고요. 타인 의존도가 높아지면 자존감이 확실히 떨어지는 것 같아요.”

- 박선덕 님 (76세) 

 

“친정 아버지께서 혼자 스스로 하시고자 하는 의지가 굉장하세요. 심장 질환이 있어서 숨이 가쁜데도 지팡이를 짚고 새벽에 집 앞 공원에서 운동을 하시더라고요. 요양보호사 도움 없이 혼자 움직이시는 그 시간에 내가 살아있다 라는 생각을 하시는 것 같아요. 저도 아버지처럼 저렇게 독립적으로 늙어갈 수 있을까 싶어요.”

- 한재덕 님 (61세) 

 

“어머니께서 방 안에서 대소변을 처리하지 않고 기어서라도 화장실에 가시는 모습을 봤거든요. 일상의 일들을 스스로 하시면서 성취감, 만족감을 느끼시는 것 같아요.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인 것 같습니다. 저도 더 나이가 들어서 병원을 갈 때 다른 사람 도움 받지 않고 스스로 갔다 오려고 합니다.”

- 신용도 님 (63세)




04
“이걸 차는 순간 노인으로 보인다면 아무도 안 살 거예요”
사회적 낙인이 없는 제품


1955년, 유아식을 만드는 대기업 하인즈는 10년간의 연구를 통해 60세 이상 고령자를 위한 노인 식품을 출시했다. 그러나 처참하게 실패하고 말았다. 고령자가 쓰러졌을 때 응급구조대를 호출할 수 있는 개인 응급 응답 시스템Personal Emergency Response System (PERS) 상품 역시 1974년에 출시되었지만, 출시부터 2004년까지 이 상품을 이용한 사람은 65세 인구의 2%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품을 ‘노인 전용’으로 분류하는 일은 사용자를 ‘약자’라고 여기는 일과 다름 없다. 그러나 스스로를 약한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젊은이를 위한 제품은 노인에게도 팔리지만, 노인을 위한 제품은 아무에게도 팔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고령 사용자를 위한 제품에 사회적 낙인효과가 없는지 다시한번 확인이 필요하다. 


©walla walla senior center


“노인 호출기 같은 상품은 실패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 같이 잘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그걸 사겠어요? 안 사죠. 저보다 더 나이 많이 든 사람들은 아예 집 밖으로 잘 안 나오겠죠."

- 박선덕 님 (76세)

“나는 내가 할머니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누군가 양보해준다고 해도 절대 안 앉고요. 아직까지는 건강하다고 생각합니다.”
- 김명숙 님 (68세)

 

“나이 든 분이 보행기나 휠체어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면 나는 저러지 말아야겠다 생각이 들어요. 안 타고, 밖에 안 다니고 싶어요. 젊은 사람들이 사용하면 어디 아파서 타나 보다 그럴 텐데 나이 들어서 타면 노인 소리 듣잖아요.”

- 송지연 님 (66세)




05
"나이가 들수록 단절을 싫어하죠."
연령 통합적인 공간


미국 플로리다에 위치한 세계 최대 은퇴자 마을 더 빌리지The Villages는 55세 이상의 은퇴자들이 모여 함께 여가생활을 즐기는 곳이다. 미국 전역에서 가장 빠르게 인구 수가 증가한 곳으로 2022년 기준 약 8만명이 더 빌리지에 살고 있으며, 현재도 지속적으로 확장 중이다. 그러나 타 세대와 단절된 삶은 건강한 노년의 대안은 아니라고 MIT 에이징랩 소장 조지프 코글린 박사는 반문한다. 또한 그는 어느 사회든 연령을 통합하는 방향을 지향할 것이며, 분리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각 연령의 특수한 요구와 관심사에 맞춰 연령별 서비스나 시설을 제공할 수도 있지만, 다양한 세대가 서로 도우며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지속가능한 모델이 필요하지 않을까?


“어떻게 보면 하숙생 같은 느낌이잖아요? 젊은 사람들이 여유가 안되면 어른이 계시는 곳에 들어가서 살고 할머니 도와드리고, 저희는 좋죠. 말동무도 할 수 있고요.”

- 박선덕 님 (76세)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나면 아직도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해요. 같은 곳에서 학교를 다녔기 때문이죠. 공간을 공유한 사람들만 아는 추억이 있어요. 여러 세대가 어울려 지내는 공간도 그런 효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 신용도 님 (63세) 

 

“나이가 들수록 단절을 싫어하죠. 젊은이와 고령자 세대가 서로 옆집에 살거나 위층과 아래층으로 분리된 구조면 좋을 것 같아요. 현관이 다르지만 필요할 때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곳도 좋고요. 각자 취향에 맞게 사적인 공간은 따로 있지만, 공동 공간이 있는 그런 곳이요. 누구든 자기에게 유익이 돌아와야 움직이기 때문에 굉장히 현실적인 고민을 해야겠죠.”

- 한재덕 님 (61세)

 

“근본적으로 같이 어울려서 사는 건 찬성이에요. 하지만 부딪히는 부분들은 좀 보완해 나가야겠죠. 고령자 의견만 구할 게 아니라 젊은이들과 함께 고민해봐야 하는 주제인 것 같아요.”

- 이백희 님 (64세)



#알츠하이머 #치매  #초고령사회 #UX리서치 #시니어접근성 #시니어트렌드


미션잇은 신체, 감각, 인지 활동 지원이 필요한 사용자 누구나 더 안전하고 편리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디자인을 연구하고, 이를 기반으로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 포용성을 높일 수 있는 전략을 제시합니다.




미션잇 AgeLab 자문단은 스마트폰 및 스마트워치 사용 경험, 제품, 서비스 등 여러가지 분야의 주제로 고령친화적인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는 방안들을 논의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정기적으로 좋은 의견을 내실 수 있는 자문단을 모집합니다. 고연령 세대가 아니시더라도 주변에 많은 소개 부탁드려요! 아래 신청하기나 이미지를 누르시면 신청 폼으로 이동합니다.

👉 신청하기 👈




MSV 임팩트 레터 구독하기
(하단 로고 클릭)


사회적 가치를 만나는 MSV 임팩트 레터에서는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에서 다루고 있는 핵심적인 주제들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인사이트를 전달 드립니다. 핵심적인 키워드는 '디자인의 사회적 가치 Design for Social Value'와 '포용적인 디자인 Inclusive Design' 그리고 '접근성Accessibility' 입니다.


주소 경기도 과천시 중앙동 38 힐스테이트 101동 612호
회사명 주식회사 미션잇 대표자 김병수
사업자등록번호 870-88-01764 통신판매업신고 제2021-서울서초-2264호
제안/문의 hello@missionit.co 전화 02-6289-6000
COPYRIGHT ⓒ MISSION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