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v. letter] no.15 뮤지엄 넥스트 Museum Next 이시대 뮤지엄이 나아가야할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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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대 뮤지엄이 나아가야할 방향
뮤지엄은 문학, 역사, 예술 등 광범위한 학문의 발전과, 교육 그리고 즐거움을 위한 장소입니다. 모든 대중들에게 열려있는만큼 포용성이 중요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앞으로의 뮤지엄은 어떤 공간이 되어야할까요? <PLAY> 호를 준비하며 실내 공간에서 장애아동을 위한 포용력있는 놀이, 프로그램 사례들을 찾아보았고 해외의 여러 뮤지엄을 컨택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포괄적인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 꼭 아이들을 대상으로만 진행된 사례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여러 전시와 프로그램을 찾아보았습니다. 뮤지엄과 같은 공공시설에서는 어떤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이들의 놀이에 포용성을 더해줄 수 있을지, 또는 관람객들의 인식에 변화를 이끌어갈 수 있을지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입니다.
배제되었던 사람들의 스토리를 서사의 중심으로, 호니먼 뮤지엄
글 박윤주 MSV 에디터 인터뷰 Julia Cort, Community Engagement Manager, Horniman Museum & Garden
Horniman Museum & Gardens, Always Part of the Story
호니먼 뮤지엄, '모든 이야기에 담겨있다' 전시
인류의 역사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삶은 기록에서 빈번히 제외되었고, 그 이야기가 고정관념에 의해 잘못 쓰이기도 했다. 뮤지엄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장애를 가진 ‘방문자’를 위한 접근성 향상의 노력은 늘었지만, 장애인이 서사의 중심이자 주체적인 서술자가 되는 경우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장애인으로 구성된 호니먼 뮤지엄의 Horniman Museum & Gardens의 접근성 자문단 Access Advisory Group은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느끼고 ‘Always Part of the Story(모든 이야기에 담겨있다)’ 상설전을 준비했다. 자문단 단원들은 박물관의 소장품 중, 자신의 메시지를 담을 수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선택해 전시에 내놓았다. 어떤 작품은 장애에 대한 편견을 담고 있고, 어떤 작품은 그에 대한 저항을 담고 있다. 뮤지엄이 포용적인 장소라면 그 서사를 만들어가는 과정 역시 포용력을 가지고 있어야하지 않을까.
Horniman Museum, Julia Cort 제공
MSV : 호니먼 뮤지엄에 대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호니먼 뮤지엄은 인류학 유물과 자연사 유물을 포함한 다양한 컬렉션을 가지고 있어요. 16 에이커 규모의 정원이 있고, 아쿠아리움, 동물농장, 나비 정원도 있죠. 국내에서 인정받는 수준의 컬렉션을 가지고 있지만, 영국의 다른 국립 박물관들이 모여있는 런던의 중심에서 떨어져 있어 여행자들이 자주 방문하지는 않아요. 그보단 지역 주민분들이 자신의 뒷마당을 드나들듯 가족 단위로 자주 방문하는 곳이죠. 어떤 분들은 일주일에 3번 이상 오기도 해요. 어릴 때 박물관에 놀러 오다 어른이 되어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다시 찾아오는 분도 계시고요. 5살 이하의 어린이들이 박물관의 주요 손님입니다.
호니먼이 위치한 포레스트 힐 Forest Hill은 런던의 남동쪽에 놓인 지방으로 다양성이 담겨있는 곳이에요. 하지만 호니먼의 방문자들이 실제 지역 거주민들의 인구 특성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걸 갈수록 느낄 수 있었어요. 박물관에 문제가 있는 거죠. 닿기 힘든 지역 주민(Hard to Reach Community)이라는 말이 있는데요. 실제로 그런 게 어디 있겠어요. 지역주민분들이 ‘닿기 힘든 사람'이 아니라 박물관이 ‘닿기 힘든 시설'인 거죠. 사람들이 박물관을 방문하지 않는 이유는 박물관 내부의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호니먼은 다양한 지역주민들과의 협업으로 박물관을 더 흥미롭고, 접근성 있는 공간으로 만들려고 힘쓰고 있어요. 저의 커리어도 이런 박물관의 가치관과 연결되어 있고요.
Horniman Museum, Julia Cort 제공
MSV : ‘모든 이야기에 담겨있다 Always Part of the Story’ 전은 어떤계기로 진행이 되었나요?
Julia : 인류학 갤러리인 월드 갤러리 World Gallery를 재건하면서 시작된 전시입니다. 이 갤러리는 ‘다양한 세계 문화와의 만남’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요. 특정 그룹의 특정 이야기가 큐레이팅 되어있는 거죠. 갤러리 끝에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짚어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어요. ‘박물관이 특정 물건을 이용해 특정 이야기를 전달했지만, 사실 우리 모두가 스토리의 창작자이고, 누구나 물건을 사용해 자신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거죠. 박물관이 변하지 않는 사실을 담는 곳이 아니라, 스토리가 창조되는 곳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MSV : 준비과정에서의 어려움은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
Julia : 준비 과정 곳곳에서 어려움이 있었지만 어려움을 느끼는 바로 그 지점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편입니다. 그곳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되기 때문이죠. 작업을 진행하기 전 인류학 큐레이터에게 접근성 자문단이 볼 유물들을 추려달라고 했어요. 큐레이터분은 ‘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 등의 키워드를 사용해 물품을 찾았는데, 이를 본 단원분들의 반응이 좋지 않았어요. 그런 단어들을 사용해 찾은 유물들로 장애의 경험이 정의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죠. 이 유물들이 담고 있는 모습 자체가 자신들이 깨고자 하는 고정관념이라고 하면서요. 이런 부분에서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MSV : 포용력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뮤지엄은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요?
Julia : 뮤지엄은 사회에서 특정한 지위를 가지고 있어요. 어떤 권위를 가지고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공간인거죠.다만 이 지위가 늘 긍정적으로 사용된 것은 아닙니다. 이전부터 뮤지엄은 특정 관점에서 특정 이야기만을 전달해왔어요. 당연히 이러한 관점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뮤지엄을 찾았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찾지 않았고요. 어떤 이는 환영하고, 어떤 이는 배제하는 공간이었던 거에요. 어쩌면 이것이 뮤지엄 출입구 경사로보다도 더 큰 문제인 것 같아요. 애초에 이곳에 오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경사로를 이용할 일도 없을 테니까요.
뮤지엄은 교육만 하는 기관이 아니에요. 사람들은 보통 휴식을 위해서 뮤지엄을 찾게 되죠. 그렇기에 이제까지 관행적으로 뮤지엄이 가졌던 역할에 갇혀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보다는 ‘진짜 대화'를 끌어낼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죠. 영국에서는 뮤지엄이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믿음이 강합니다.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중립적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는 거죠. 하지만 지금까지 영국의 뮤지엄이 달고 있는 꼬리표는 중립성과 거리가 멉니다. 대화의 스크립트는 이미 짜여있고, 관점은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었어요.
변화는 뮤지엄 내부에서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저는 이 분야에서 거의 20년을 일했지만, 기획전시 프로젝트 하나가 뮤지엄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접근으로는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 수 없어요. 협력을 통한 공동 작업이 필요해요. 뮤지엄은 시혜자이고 방문자는 수혜자라는 관점을 넘어, 외부인에게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폐성장애를 가진 아이들도 마음껏 놀 수 있는 시간 선샤인 선데이, 글레이저 칠드런스 뮤지엄
글 박윤주 MSV 에디터 인터뷰 Kate White, Marketing & Creative Vice President, Glazer Children's Museum
Glazer Children's Museum, Sunshine Sunday
글레이저 어린이 박물관, 선샤인 선데이
글레이저 칠드런스 뮤지엄 Glazer Children’s Museum은 매달 마지막 일요일, 박물관의 조명과 음향의 강도를 낮추고,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비장애 아이들과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와 관련하여 글레이저 칠드런스 뮤지엄의 마케팅과 크리에이티브 팀을 담당하고 있는 케이트 화이트 Kate White와 대화를 나누었다.
MSV : 자폐성 장애 아이들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제공하고 있는데요. 선샤인 선데이 Sunshine Sunday는 어떤 프로그램인가요?
Kate : 선샤인 선데이는 여유로운 환경에서 자폐성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방문할 수 있도록 만든 프로그램이에요. 한 달에 한 번, 일요일 오전에 스피커 음량와 조명을 낮춰 아이들이 자극이 덜한 환경에서 박물관을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있어요. 입장권은 5달러로 할인이 적용되고요. 원래는 박물관이 열지 않는 시간에 개장을 하는거라 방문객 수도 적어서 주변 사람으로 인한 자극도 어느정도 낮출 수 있습니다.
분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편안한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목적
선샤인 선데이에 방문하는 분들의 경험이 다른 날에 방문하는 분들의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면 해요. 우리의 목적은 아이들을 분리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박물관이 번잡한 때의 인파와 시끄러운 소음을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좀 더 편안한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죠. 선샤인 선데이에도 다른 날들과 같은 행사가 진행됩니다. 다만 스태프 수, 활동 시간, 활동 재료를 늘려 진행하죠.
MSV : 그럼 이 날은 다른 주의 일요일보다 방문자가 적은 편인가요?
Kate : 그렇죠. 일요일 오후에는 다른 날과 방문객 수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선샤인 선데이가 진행되는 일요일 오전에는 방문객 수가 100명 내외로 낮게 유지됩니다. 장애를 증명할 서류는 필요하지 않아요. 신경발달장애를 가진 어린이가 아니라도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어 이날 방문한다면 환영이에요.
평소에 오지 않던 특별한 분들도 오세요. 사우스 플로리다 대학의 자폐 및 관련 장애 센터 (Center for Autism and Related Disabilities)나 유아교육 단체 (Early Learning Coalition), 그 외의 다양한 장애 관련 지역단체 관계자분들을 이날 박물관에 초대하거든요. 단체별로 테이블이 마련되고, 무료 지원 서비스가 제공되기도 해요. 박람회 같은 거죠. 선샤인 선데이를 찾아오는 방문자분들이 지역 내의 자원을 잘 알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시작된 행사예요.
할로윈이나 생일잔치 같은 박물관의 주요행사들을 일부러 선샤인 선데이가 진행되는 주에 열고 있어요. 본행사는 토요일에 진행되는데요, 거기서 사용했던 장식을 그대로 두고, 토요일에 왔던 엔터테이너 분들도 다시 불러 일요일에 같은 행사를 조금 더 차분한 버전으로 다시 진행해요. 충분한 공간과 시간이 필요한 어린이들이 재미있는 연례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도록요.
MSV : 선샤인 선데이를 운영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Kate : 박물관 건물의 물리적인 조건 자체가 문제가 될 때가 있어요. 화장실도 그 중 하나였죠.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아이 중에는 청각 자극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아이가 많습니다. 그런데 글레이저의 자동 변기는 물 내리는 소리가 정말 커요. 그래서 변기 센서에 일시적으로 설치하는 커버를 제공하고 있어요. 이를 설치하면 화장실에 누가 있을 때는 변기 물이 내려가지 않아요. 아이가 나간 뒤 물을 내릴 수 있죠. 선샤인 선데이 뿐만 아니라 다른 날에도 사용할 수 있는데요, 선샤인 선데이에 더 많이 이용되기는 하죠. 이런 식으로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글레이저의 위치 때문에 어려움이 생기기도 합니다. 글레이저는 시내에 있고, 건물 내에 따로 주차장이 없어 방문자들이 박물관 밖의 주차장을 사용해야 합니다. 박물관에 오기 위해선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바쁜 거리를 지나야 하는 거죠. 이 경험을 개선하기 위해 소셜 스토리 Social Stories를 제공하고 있어요. 소셜 스토리는 팸플릿이나 비디오 같은 매체를 통해 공간을 방문할 때 마주치게 될 것들을 미리 말해주는 기구에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경우, 어떤 장소에 가기 전, 그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 그에 대비하는 것이 참 중요해요. 새로운 전시, 박물관 근처에서의 큰 이벤트, 주차장 임시 폐쇄 등의 변화는 심리탈진을 유발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요. 글레이저는 박물관으로 걸어오는 과정을 미리 경험할 수 있도록 관점 비디오 (Point of View Video)를 제공하고 있어요. 주차장에서 박물관까지의 코너 하나하나를 직접 걸으며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세하게 알려주는 거죠. 작년에는 탬파에서 슈퍼볼이 열렸는데 영상에 “공원에서 평소에 보지 못하던 바리케이드를 보게 될 거예요. 이번 주말에 슈퍼볼이 열리거든요.”와 같은 설명을 담기도 했어요. 자폐 장애를 가진 분들에게는 엘리베이터 내부부터 주차장 구조와 같은 작은 부분들도 정말 크게 다가올 수 있어요. 그래서 그분들이 여기에 왔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죠. 비디오 외에 다른 매체들도 사용해봤지만, 설명글을 늘여놓는 것보다 바로 보여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느껴 비디오 제작으로 방향을 잡게 되었죠.
뮤지엄은 문학, 역사, 예술 등 광범위한 학문의 발전과, 교육 그리고 즐거움을 위한 장소입니다. 모든 대중들에게 열려있는만큼 포용성이 중요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앞으로의 뮤지엄은 어떤 공간이 되어야할까요? <PLAY> 호를 준비하며 실내 공간에서 장애아동을 위한 포용력있는 놀이, 프로그램 사례들을 찾아보았고 해외의 여러 뮤지엄을 컨택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포괄적인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 꼭 아이들을 대상으로만 진행된 사례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여러 전시와 프로그램을 찾아보았습니다. 뮤지엄과 같은 공공시설에서는 어떤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이들의 놀이에 포용성을 더해줄 수 있을지, 또는 관람객들의 인식에 변화를 이끌어갈 수 있을지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입니다.
배제되었던 사람들의 스토리를 서사의 중심으로, 호니먼 뮤지엄
글 박윤주 MSV 에디터
인터뷰 Julia Cort, Community Engagement Manager, Horniman Museum & Garden
Horniman Museum & Gardens, Always Part of the Story
호니먼 뮤지엄, '모든 이야기에 담겨있다' 전시
인류의 역사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삶은 기록에서 빈번히 제외되었고, 그 이야기가 고정관념에 의해 잘못 쓰이기도 했다. 뮤지엄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장애를 가진 ‘방문자’를 위한 접근성 향상의 노력은 늘었지만, 장애인이 서사의 중심이자 주체적인 서술자가 되는 경우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장애인으로 구성된 호니먼 뮤지엄의 Horniman Museum & Gardens의 접근성 자문단 Access Advisory Group은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느끼고 ‘Always Part of the Story(모든 이야기에 담겨있다)’ 상설전을 준비했다. 자문단 단원들은 박물관의 소장품 중, 자신의 메시지를 담을 수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선택해 전시에 내놓았다. 어떤 작품은 장애에 대한 편견을 담고 있고, 어떤 작품은 그에 대한 저항을 담고 있다. 뮤지엄이 포용적인 장소라면 그 서사를 만들어가는 과정 역시 포용력을 가지고 있어야하지 않을까.
MSV : 호니먼 뮤지엄에 대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호니먼 뮤지엄은 인류학 유물과 자연사 유물을 포함한 다양한 컬렉션을 가지고 있어요. 16 에이커 규모의 정원이 있고, 아쿠아리움, 동물농장, 나비 정원도 있죠. 국내에서 인정받는 수준의 컬렉션을 가지고 있지만, 영국의 다른 국립 박물관들이 모여있는 런던의 중심에서 떨어져 있어 여행자들이 자주 방문하지는 않아요. 그보단 지역 주민분들이 자신의 뒷마당을 드나들듯 가족 단위로 자주 방문하는 곳이죠. 어떤 분들은 일주일에 3번 이상 오기도 해요. 어릴 때 박물관에 놀러 오다 어른이 되어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다시 찾아오는 분도 계시고요. 5살 이하의 어린이들이 박물관의 주요 손님입니다.
호니먼이 위치한 포레스트 힐 Forest Hill은 런던의 남동쪽에 놓인 지방으로 다양성이 담겨있는 곳이에요. 하지만 호니먼의 방문자들이 실제 지역 거주민들의 인구 특성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걸 갈수록 느낄 수 있었어요. 박물관에 문제가 있는 거죠. 닿기 힘든 지역 주민(Hard to Reach Community)이라는 말이 있는데요. 실제로 그런 게 어디 있겠어요. 지역주민분들이 ‘닿기 힘든 사람'이 아니라 박물관이 ‘닿기 힘든 시설'인 거죠. 사람들이 박물관을 방문하지 않는 이유는 박물관 내부의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호니먼은 다양한 지역주민들과의 협업으로 박물관을 더 흥미롭고, 접근성 있는 공간으로 만들려고 힘쓰고 있어요. 저의 커리어도 이런 박물관의 가치관과 연결되어 있고요.
MSV : ‘모든 이야기에 담겨있다 Always Part of the Story’ 전은 어떤계기로 진행이 되었나요?
Julia : 인류학 갤러리인 월드 갤러리 World Gallery를 재건하면서 시작된 전시입니다. 이 갤러리는 ‘다양한 세계 문화와의 만남’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요. 특정 그룹의 특정 이야기가 큐레이팅 되어있는 거죠. 갤러리 끝에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짚어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어요. ‘박물관이 특정 물건을 이용해 특정 이야기를 전달했지만, 사실 우리 모두가 스토리의 창작자이고, 누구나 물건을 사용해 자신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거죠. 박물관이 변하지 않는 사실을 담는 곳이 아니라, 스토리가 창조되는 곳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MSV : 준비과정에서의 어려움은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
Julia : 준비 과정 곳곳에서 어려움이 있었지만 어려움을 느끼는 바로 그 지점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편입니다. 그곳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되기 때문이죠. 작업을 진행하기 전 인류학 큐레이터에게 접근성 자문단이 볼 유물들을 추려달라고 했어요. 큐레이터분은 ‘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 등의 키워드를 사용해 물품을 찾았는데, 이를 본 단원분들의 반응이 좋지 않았어요. 그런 단어들을 사용해 찾은 유물들로 장애의 경험이 정의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죠. 이 유물들이 담고 있는 모습 자체가 자신들이 깨고자 하는 고정관념이라고 하면서요. 이런 부분에서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MSV : 포용력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뮤지엄은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요?
Julia : 뮤지엄은 사회에서 특정한 지위를 가지고 있어요. 어떤 권위를 가지고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공간인거죠.다만 이 지위가 늘 긍정적으로 사용된 것은 아닙니다. 이전부터 뮤지엄은 특정 관점에서 특정 이야기만을 전달해왔어요. 당연히 이러한 관점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뮤지엄을 찾았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찾지 않았고요. 어떤 이는 환영하고, 어떤 이는 배제하는 공간이었던 거에요. 어쩌면 이것이 뮤지엄 출입구 경사로보다도 더 큰 문제인 것 같아요. 애초에 이곳에 오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경사로를 이용할 일도 없을 테니까요.
뮤지엄은 교육만 하는 기관이 아니에요. 사람들은 보통 휴식을 위해서 뮤지엄을 찾게 되죠. 그렇기에 이제까지 관행적으로 뮤지엄이 가졌던 역할에 갇혀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보다는 ‘진짜 대화'를 끌어낼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죠. 영국에서는 뮤지엄이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믿음이 강합니다.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중립적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는 거죠. 하지만 지금까지 영국의 뮤지엄이 달고 있는 꼬리표는 중립성과 거리가 멉니다. 대화의 스크립트는 이미 짜여있고, 관점은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었어요.
변화는 뮤지엄 내부에서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저는 이 분야에서 거의 20년을 일했지만, 기획전시 프로젝트 하나가 뮤지엄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접근으로는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 수 없어요. 협력을 통한 공동 작업이 필요해요. 뮤지엄은 시혜자이고 방문자는 수혜자라는 관점을 넘어, 외부인에게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폐성장애를 가진 아이들도 마음껏 놀 수 있는 시간 선샤인 선데이, 글레이저 칠드런스 뮤지엄
인터뷰 Kate White, Marketing & Creative Vice President, Glazer Children's Museum
Glazer Children's Museum, Sunshine Sunday
글레이저 어린이 박물관, 선샤인 선데이
글레이저 칠드런스 뮤지엄 Glazer Children’s Museum은 매달 마지막 일요일, 박물관의 조명과 음향의 강도를 낮추고,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비장애 아이들과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와 관련하여 글레이저 칠드런스 뮤지엄의 마케팅과 크리에이티브 팀을 담당하고 있는 케이트 화이트 Kate White와 대화를 나누었다.
MSV : 자폐성 장애 아이들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제공하고 있는데요. 선샤인 선데이 Sunshine Sunday는 어떤 프로그램인가요?
Kate : 선샤인 선데이는 여유로운 환경에서 자폐성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방문할 수 있도록 만든 프로그램이에요. 한 달에 한 번, 일요일 오전에 스피커 음량와 조명을 낮춰 아이들이 자극이 덜한 환경에서 박물관을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있어요. 입장권은 5달러로 할인이 적용되고요. 원래는 박물관이 열지 않는 시간에 개장을 하는거라 방문객 수도 적어서 주변 사람으로 인한 자극도 어느정도 낮출 수 있습니다.
분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편안한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목적
선샤인 선데이에 방문하는 분들의 경험이 다른 날에 방문하는 분들의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면 해요. 우리의 목적은 아이들을 분리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박물관이 번잡한 때의 인파와 시끄러운 소음을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좀 더 편안한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죠. 선샤인 선데이에도 다른 날들과 같은 행사가 진행됩니다. 다만 스태프 수, 활동 시간, 활동 재료를 늘려 진행하죠.
MSV : 그럼 이 날은 다른 주의 일요일보다 방문자가 적은 편인가요?
Kate : 그렇죠. 일요일 오후에는 다른 날과 방문객 수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선샤인 선데이가 진행되는 일요일 오전에는 방문객 수가 100명 내외로 낮게 유지됩니다. 장애를 증명할 서류는 필요하지 않아요. 신경발달장애를 가진 어린이가 아니라도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어 이날 방문한다면 환영이에요.
평소에 오지 않던 특별한 분들도 오세요. 사우스 플로리다 대학의 자폐 및 관련 장애 센터 (Center for Autism and Related Disabilities)나 유아교육 단체 (Early Learning Coalition), 그 외의 다양한 장애 관련 지역단체 관계자분들을 이날 박물관에 초대하거든요. 단체별로 테이블이 마련되고, 무료 지원 서비스가 제공되기도 해요. 박람회 같은 거죠. 선샤인 선데이를 찾아오는 방문자분들이 지역 내의 자원을 잘 알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시작된 행사예요.
할로윈이나 생일잔치 같은 박물관의 주요행사들을 일부러 선샤인 선데이가 진행되는 주에 열고 있어요. 본행사는 토요일에 진행되는데요, 거기서 사용했던 장식을 그대로 두고, 토요일에 왔던 엔터테이너 분들도 다시 불러 일요일에 같은 행사를 조금 더 차분한 버전으로 다시 진행해요. 충분한 공간과 시간이 필요한 어린이들이 재미있는 연례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도록요.
MSV : 선샤인 선데이를 운영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Kate : 박물관 건물의 물리적인 조건 자체가 문제가 될 때가 있어요. 화장실도 그 중 하나였죠.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아이 중에는 청각 자극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아이가 많습니다. 그런데 글레이저의 자동 변기는 물 내리는 소리가 정말 커요. 그래서 변기 센서에 일시적으로 설치하는 커버를 제공하고 있어요. 이를 설치하면 화장실에 누가 있을 때는 변기 물이 내려가지 않아요. 아이가 나간 뒤 물을 내릴 수 있죠. 선샤인 선데이 뿐만 아니라 다른 날에도 사용할 수 있는데요, 선샤인 선데이에 더 많이 이용되기는 하죠. 이런 식으로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글레이저의 위치 때문에 어려움이 생기기도 합니다. 글레이저는 시내에 있고, 건물 내에 따로 주차장이 없어 방문자들이 박물관 밖의 주차장을 사용해야 합니다. 박물관에 오기 위해선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바쁜 거리를 지나야 하는 거죠. 이 경험을 개선하기 위해 소셜 스토리 Social Stories를 제공하고 있어요. 소셜 스토리는 팸플릿이나 비디오 같은 매체를 통해 공간을 방문할 때 마주치게 될 것들을 미리 말해주는 기구에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경우, 어떤 장소에 가기 전, 그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 그에 대비하는 것이 참 중요해요. 새로운 전시, 박물관 근처에서의 큰 이벤트, 주차장 임시 폐쇄 등의 변화는 심리탈진을 유발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요. 글레이저는 박물관으로 걸어오는 과정을 미리 경험할 수 있도록 관점 비디오 (Point of View Video)를 제공하고 있어요. 주차장에서 박물관까지의 코너 하나하나를 직접 걸으며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세하게 알려주는 거죠. 작년에는 탬파에서 슈퍼볼이 열렸는데 영상에 “공원에서 평소에 보지 못하던 바리케이드를 보게 될 거예요. 이번 주말에 슈퍼볼이 열리거든요.”와 같은 설명을 담기도 했어요. 자폐 장애를 가진 분들에게는 엘리베이터 내부부터 주차장 구조와 같은 작은 부분들도 정말 크게 다가올 수 있어요. 그래서 그분들이 여기에 왔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죠. 비디오 외에 다른 매체들도 사용해봤지만, 설명글을 늘여놓는 것보다 바로 보여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느껴 비디오 제작으로 방향을 잡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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