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마지막을 위한 가장 평범한 공간


일로이 반 할

호그벡 마을 공동 설립자


인터뷰 미션잇 편집부

사진제공 Be Advice / De Hogeweyk / Vivium Zorggroep





일로이 반 할Eloy van Hal은 치매 환자를 위한 네덜란드 호그벡 마을의 공동 설립자이다. 환자가 아닌 사람이 중심이 되는 돌봄을 고민하던 그는 차가운 병동이 아닌, 저녁밥 짓는 냄새가 나고 아늑한 벽난로가 있는 가장 평범한 공간을 구현했다. 건강 상태와 상관없이, 누구나 그동안 살아온 환경과 가장 비슷한 곳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세계 곳곳에 호그벡과 비슷한 마을이 점점 많아지길 바란다고 말하는 그는 오늘도 돌봄의 미래를 제시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Be Advice / De Hogeweyk / Vivium Zorggroep


호그벡 마을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호그벡 마을의 이야기는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사실 초기의 호그벡은 일반 요양시설과 다름없이 흰 가운을 입은 간호사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는 곳이었어요. 기본 의료 서비스만 제공했고, 치매 환자의 진정한 필요에 대한 고민은 찾아볼 수 없었죠. 이런 전통적인 돌봄 모델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면서 치매 환자들의 삶의 질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을 하기 시작했죠. 질병과 상관없이 이들도 가장 평범한 일상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가장 평범한 일상’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이네요. 호그벡의 공간은 어떻게 구상하셨나요? 

환자들이 살아온 환경과 가장 비슷한 모습으로 꾸미고 싶었어요. 네덜란드식 주택을 짓고, 한 집에서 환자 6, 7명 정도가 함께 지낼 수 있는 공간을 구상했어요. 작은 커뮤니티처럼요. 입주민들이 각자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낮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는 곳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어요. 전문 간병인이 24시간 대기하지만, 꼭 필요할 때만 개입하는 그런 곳이요.   


가장 이상적인 요양시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호그벡 입주민들은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나요? 

‘가장 나답게’ 지내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오늘 하루는 개인 공간에서 혼자 있을지, 공용 거실에서 다 함께 지낼지 동선을 스스로 결정해요.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 레스토랑에서 친구를 만나거나, 마을 클럽에서 각종 동아리 활동에도 참여할 수 있고요. 다른 주민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마을 행사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호그벡은 각 사람의 취향과 선택을 존중해요. 인지 능력이 많이 저하되어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없다면 돌봄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최대한 그 몫을 대신해 주려고 하고요. 침대에만 누워 지내는 중증 치매 환자들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죠. 호그벡은 돌봄의 미래를 제시했다고 생각해요. 국제적인 관심도 점점 커지고 있고요. 


호그벡에서 영감을 받은 프로젝트가 프랑스, 이탈리아, 노르웨이, 호주 등에서 진행되고 있어요. 우리나라에도 이런 곳이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몇 달 전쯤 한국에서 의사 한 분이 호그벡 마을을 방문해 주셨어요. 호그벡 돌봄 모델을 참고해서 한국 의료 서비스를 개선할 방안을 개발 중이라고 하시더군요. 그 의사 분은 저와 함께 마을 광장을 둘러봤는데 그날따라 날씨가 좋아서 많은 사람이 밖에 나와 있었어요. 5분 동안 그 모습을 관찰하더니 “누가 환자인지, 가족인지, 직원인지 모르겠네요”라고 하더군요. 호그벡 마을의 특징을 한 문장으로 잘 정리해 주셨다고 생각해요. 환자들이 그만큼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겠죠. 입주민들이 마을을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거실에 앉아서 신문을 읽는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했어요. 한국의 치매 환자들은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지내는데, 그 점이 정말 아쉽다고요. 똑같은 질환이 있다고 해도 어떤 돌봄 서비스를 받느냐에 따라 삶의 방식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죠. 전통적인 돌봄 모델은 환자의 신체적 건강에만 초점을 맞추는데, 이제는 사회적 모델을 바탕으로 환자의 일상과 행복까지 총체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호그벡 마을의 입주민들은 환자식을 배식받지 않는다. 여느 가정집과 다름없이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즐긴다. 간병인은 꼭 필요할 때만 개입한다.  

ⓒBe Advice / De Hogeweyk / Vivium Zorggroep




호그벡 마을 웹사이트에서 포용성에 관한 문구를 봤어요. 호그벡에서 말하는 포용성이란 어떤 것인가요? 

치매 환자를 격리하거나 가두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으로서 존중하고 포함한다는 뜻이에요. 예를 들어 레스토랑이나 극장은 외부인에게도 개방되어 있어서 호그벡 입주민들이 방문객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어요. 외부 사람들도 치매 환자와 자연스럽게 접점이 생기는 거죠. 네덜란드 선거 기간에는 호그벡 커뮤니티를 위해 마을 안에 투표소를 따로 마련하기도 하고요.   


우리나라에도 고급 요양시설이나 실버타운이 있지만 대부분 비용이 높아서 이용이 제한적이에요. 네덜란드에도 비슷한 어려움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호그벡은 국가 인증을 받은 전문 간호 시설이기 때문에 네덜란드 국가 의료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호그벡 입주민들은 소득 수준에 따라 최소한의 금액만 부담하고요. 개인이 네덜란드 정부에 시설 이용료를 지불하면 국가 보건 예산에서 호그벡으로 운영 비용이 지급돼요. 의류 등 개인 생활필수품은 입주민들이 국민 연금으로 구입합니다. 네덜란드에는 호그벡 외에도 2,000여개의 전문 요양 시설이 있는데, 지급되는 예산은 동일해요. 그 중에는 병동과 무균실에 사람들을 가두는 전통적인 기관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러니까 호그벡은 같은 가격으로 새로운 차원의 돌봄을 제공하는 거죠.  


호그벡 마을이 국제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원칙이 다양한 상황에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호그벡은 중증 치매 환자를 위한 요양시설이지만 호그벡의 돌봄 모델이 장애가 있는 사람이나, 사회적으로 소외됐지만 지역 사회에 소속되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어요. 호그벡 모델은 치료의 질만큼이나 삶의 질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할 거라고 생각해요. 현대사회에는 ‘환자’가 아닌 ‘사람’이 중심이 되는 돌봄이 점차 사라지고 있어요. 안전을 이유로 감옥 같은 시설에 사람들을 가두고 있고요. 신체 건강 차원의 돌봄만이 아니라 삶의 질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져야 해요. 삶의 마지막 몇 달, 몇 년을 잘 보내는 일이 수명을 연장하는 일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호그벡은 나이나 건강에 상관없이 누구든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주도해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죠. 삶과 죽음, 돌봄에 대한 생각은 문화나 가치관에 따라 각자 다르기 때문에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더 좋다고 강요하고 싶진 않아요. 하지만 전통적인 돌봄의 모델에서 벗어나,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유를 누릴 방법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느 문화권에서든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는 문제인 만큼 함께 직면하고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누가 환자인지, 가족인지, 직원인지 모르겠네요”라고 하더군요. 

호그벡 마을의 특징을 한 문장으로 잘 정리해 주셨다고 생각해요. 

환자들이 그만큼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겠죠.



일로이 반 할의 인터뷰 전문은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 5호 <시니어>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주소 경기도 과천시 중앙동 38 힐스테이트 101동 612호
회사명 주식회사 미션잇 대표자 김병수
사업자등록번호 870-88-01764 통신판매업신고 제2021-서울서초-2264호
제안/문의 hello@missionit.co 전화 02-6289-6000
COPYRIGHT ⓒ MISSION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