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력 있는 도시를 위한 

효과적인 방법


김혜일 정보 접근성 전문가, 시각장애


인터뷰 신연선

사진 영상 김은혜




중학교 2학년, 처음으로 시력 저하를 경험했다. 한쪽 눈이 이틀 사이에 갑자기 실명됐고, 남은 시력마저 점점 떨어졌다. 시간이 지나 양쪽 눈이 모두 전혀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되었는데 수술 끝에 조금이나마 시력을 회복했다. 회복한 시력은 다시 서서히 떨어져 또 한 번 수술을 했고, 현재는 오른쪽 눈에만 잔존 시력이 있는 상황이다. 워낙 컴퓨터를 좋아했다. 약 10여 년 전, 국내에 웹 접근성 의무화가 한창 진행되던 시기에 우연히 정보 접근성 전문가로 일을 시작하게 됐다. 이후 KBS, 국립중앙도서관, KB국민은행 등의 정보 접근성을 모니터링하고, 개선해왔다. 현재는 ‘링키지랩’에서 접근성 전문가로 근무 중이다.




좋은 기회를 만나 정보 접근성 전문가의 

길을 걸어온 김혜일 님.


그러나 전문성을 가진 직업을 찾기에 

시각장애인이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시각장애인의 경우 소프트웨어의 

문제가 심각하다"라고 말하는 김혜일 님은

기업과 사회가 장애인을 

고용할 준비가 되었는지를 반문한다.”




인터뷰 중인 김혜일 님 ⓒMissionit


장애인은 의학적으로는 더 이상 해결이 안 되는 사람들이거든요. 접근성 분야가 매력 있는 게, 의학적으로 해결이 안 되는 것을 기술로 해결하는 거예요. 엄청난 일이죠. 심지어 그 기술의 난이도가 어렵지도 않아요. 사회적인 수준에서도 이것만큼 효과적인 일이 없죠. 의료 비용, 복지 비용을 지출하는 것보다 장애인들이 혼자 살아갈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해요.


핸드폰 카메라를 통해 글자를 읽는 김혜일 님 ⓒMissionit




정보 접근성 전문가로 10년 넘게 활동하고 계시죠. 정확히 어떤 업무를 하시는 건가요?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는 ‘웹 접근성’ 분야에 가까웠어요. 당시 국내에 웹 접근성 의무화가 진행되고 있었고요. 많은 기업들에 장애인이 실제로 서비스를 테스트하는 것에 대한 욕구가 있었죠. 저도 지인의 소개로 웹 사이트 접근성을 확인하는 일에 참여하게 되면서 일을 시작했어요. 업무는 이렇습니다. 시각장애인의 사용 환경에서 특정 서비스를 이용해보는 거죠. 장애인이 아닌 환경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장애인 환경에서는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들이 있어요. 그런 문제점을 찾아내고 업체에 리포팅해주면 그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들이 문제를 보완하는 방식이에요.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시는 어플을 예로 설명해볼게요. 요즘 ‘클럽하우스’ 많이 쓰시죠? 

접속을 하면 사람들 목록, 방 목록 등이 나오잖아요. 그것이 음성 프로그램에 접근했을 때 잘 들리는지, 초점이 원하는 곳으로 잘 넘어가는지 확인하는 거예요. 가령 클럽하우스에서 ‘스피커’로 초청이 왔을 때 녹색 표시의 알림이 내려오잖아요. 만약 음성 프로그램으로는 그 알림이 접근이 안 된다는 것이 발견되면 “보이스 오버로는 알림이 접근되지 않는다, 이것은 초점이 접근되어야 하고, 다 읽혀야 한다”라는 피드백을 전하는 방식이에요.


처음 일을 시작한 것이 지인의 소개였다고요?

네, 저는 이 분야에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어릴 때부터 컴퓨터를 좋아해서 많이 해온 상태이긴 했죠. 주변에서 필요하다고 하면 윈도우 깔아주고(웃음) 하는 정도였는데요. 그러다 지인이 국내에 단 한 곳 있던 시각장애인을 위한 스크린 리더 개발 회사에 소개를 해줬어요. 그곳에서 일하면서 처음으로 접근성이 어떻게 되는지를 알게 된 거예요. 이후 일이 계속 연결이 됐어요. 그러니까 처음부터 접근성을 하려고 덤빈 건 아니었어요. 타이밍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시작 단계였기 때문에 겪은 어려움도 있었겠죠. 

컴퓨터를 좋아했고, 이해도가 있긴 했지만 가령 개발 언어 같은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오는 힘듦도 있지 않았나요?

슬픈 얘기인데요.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은 개발자잖아요. 이들은 코드를 가지고 얘기를 하는데 저는 코드를 몰라요. 그러니까 필요하다고 말을 해도 개발자가 그냥 “안 돼요”라고 해버리면 더 따져볼 방법이 없어요. 제가 좀 알면 더 파고들어 볼 텐데 모르니까 그게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개발자는 아니지만 개발 기초 지식은 알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 됐어요. 더구나 과거 웹 접근성 시절에는 마크업을 브라우저에서 바로 열어 볼 수가 있었거든요. 공부하기가 그나마 괜찮았는데요. 지금은 너무 어렵죠. 어플은 완전히 다른 분야라서요.


그 밖에,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에 업무에서 겪는 불편함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모든 게 불편하죠. 프리랜서로 일하던 시절에는 해당 업체에 찾아가는 것부터 일이었고요. 가서 사용하는 장비도 내가 쓰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어요. 스크린 리더를 깔아놨다는데 실행해보면 아무것도 안 돼서 하루 공치고 온 적도 많았는데요. 지금도 저시력이다 보니 못 보고 놓치는 게 많아요. 실제 업무 담당자와 얘기할 때 소통 오류가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나마 저와 협업을 오래 해온 분들은 제가 놓치는 것도 미리 알아서 “이거 확인해달라"라고 말해주는 상황이에요.


그런 문제들을 방지하고, 원활하게 업무하기 위한 김혜일 님만의 업무 노하우는 뭔가요?

우선 업체에 가기 전에 테스트를 하기 위해 필요한 프로그램들을 미리 알려주고, 설치해두라고 요청하죠. 그게 안 되면 차선책으로 ‘이것이라도 되어야 한다’고까지 말을 하고요. 공간에 따라서는 리포트를 위한 문서를 쓰는 것조차 힘들 때가 있어서 만약 문서 작업이 어려운 환경이면 리포팅을 대신 작성할 인력을 한 명 보내 달라고도 해요. 예전에는 이렇게 해도 열에 한 번은 문제가 생겼는데요. 지금은 그런 일이 거의 없어요.


김혜일 님의 경우 전문적인 길을 만들어 오셨지만 시각장애인에게 직업 선택권이 워낙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잖아요. 직업 선택의 한계를 많이 절감하실 것 같은데 어떤가요?

‘시각장애인 직업’, ‘재활’ 이런 것 검색해보시면 바로 아실 거예요. 잘해야 교수, 교사 같은 직업이 나오고 대부분은 안마사 계열이에요. 실제로 시각장애인들에게는 그런 직업 외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다 있는 것 같아요. 새로운 길을 개척한 사람들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고요. 많은 분들이 힘들어해요. 가령 공무원인 시각장애인도 많은데요. 업무에서 쓰는 프로그램이 되게 다양하잖아요. 그것들을 음성 프로그램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 따져보면 비관적이에요. 부족한 부분이 아직도 많아요. 교사나 일반 기업도 마찬가지일 텐데요. 인트라넷 사용에 있어 우선순위가 계속 밀리니까 하다못해 시각장애인은 휴가 신청 하나를 못하는 거죠. 시각장애인의 경우 소프트웨어의 문제가 심각해요. 사회적으로 장애인 고용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는데요. 과연 장애인을 고용할 준비를 조직 차원에서 했는지 의문이 들어요.


IT 직군에 취업을 희망하는 시각장애인 청년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다른 사람한테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잘하는 것, 그리고 세상에 내게 원하는 것은 각각 다르거든요. 특히 장애인은 세상이 내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봐야 하고요. 그중에서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해요. 내가 장애인이라서 더 잘할 수 있는 게 있거든요. 자아실현은 그다음에, 내 직업에서 자리를 잡으면 해도 되죠.



김혜일 님의 인터뷰 전문은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 2호 <직업>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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