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를 줄 수 있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채수민 댄서, 지체장애


인터뷰 임나리

사진 영상 김은혜




삶을 주체적으로 사는 이들의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긍정과 적극성이 아닐까. 댄스스포츠 선수 채수민 님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실용무용과에 재학 중이던 대학생 시절 낙상 사고로 인해 척추 신경에 손상을 입었다. 댄서의 꿈을 포기하려는 찰나, 운명처럼 휠체어 댄스스포츠와 만났다. 춤을 출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주저 없이 새로운 길에 들어섰고, 2년 만에 국가대표 선수라는 꿈을 이뤘다. 어떤 기회가 주어지든 감사하며 적극적으로 응한다는 그는 인터뷰 내내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 웃음은 긍정의 힘이 피어나는 원천이기도 했고, 그 힘으로 일궈낸 현재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나의 본캐는 댄스스포츠 선수’라고 말하는 

채수민 님은 여러 가지 ‘부캐’도 가지고 있다. 


리포터로 활동하고 있고, 휠체어 이용자의 

일상 복귀를 돕는 코치로 일한 적도 있다.


그가 하고 있는 다양한 활동들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준다.




중대 물빛 공원에서 만난 채수민 님 ⓒMissionit


댄스스포츠는 언제 시작하셨어요?

2019년 5월부터 시작했어요.


그 해에 전국선수권대회에 출전하셨죠?

맞아요. 제가 2019년 2월 중순에 퇴원했는데요. 마지막에 입원했던 국립재활원의 사회복지 선생님께서 (휠체어) 댄스스포츠에 대해 말씀해주셨어요. 서울연맹에 소속돼 있는 선수 한 분을 소개해주셔서, 상담을 하러 갔다가 선수가 돼버렸죠. (웃음) 선수가 되자마자 파트너를 만나서 체전까지 나가게 됐고요. (웃음) 그렇게 선수 생활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첫 출전이었는데 종합 2위를 하셨다고요.

많은 종목과 부문이 있는데, 그 중에서 휠체어 파트너랑 자이브 부문에서 2위를 했어요. 그리고 라틴 종목 단체전에서 서울팀이 2위를 했고요. 그래서 메달을 2개 땄습니다. (웃음)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세요. 일단 ‘(주)유플러스아이티’라는 곳에 소속돼 있으시고 ‘이지트립’에서 리포터로도 활약하고 계시죠.

유플러스아이티에는 장애인 선수단으로 고용된 거예요. IT와는 전혀 관계가 없고요. (웃음) 하루 4시간씩 주5일 동안 연습하면서, 유플러스아이티를 알리는 선수로 활동하고 있어요. 이지트립 리포터는 제 부캐 중에 하나인데요. (웃음) 제 인스타그램을 보시고 디엠을 주셨어요. 너무 좋은 기회였기 때문에 시작을 했고, 저를 계속 잘 봐주셔서 리포터로 제의가 들어올 때마다 촬영을 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일도 하고 계세요?

아니요. 사실 제 정식 캐릭터는 댄스스포츠인데, 이 장르를 하고 있는 척수 환자 중에 젊은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 부분을 예쁘게 봐주셔서 ‘댄스스포츠 선수 채수민’을 많이 찾아주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많은 기회가 있었고 많은 프로젝트에 임할 수 있었던 거고요. 부캐라고 하면 이지트립 리포터가 있고, 또 최근에는 ‘일상홈 프로그램’의 코치로 잠깐 활동을 했었습니다. 퇴원하신 지 얼마 안 된 휠체어 타시는 분들과 코치가 일대일로 매칭이 돼서 한 달 동안 생활하는 프로그램인데요. 제가 그 프로그램으로 인해 사회에 나올 수 있었고 지금 잘 활동하고 있으니까 코치로 활동하면 어떻겠냐는 부탁을 받아서 잠깐 야간 코치 일을 했었어요.


‘일상홈’은 한국척수장애인협회에서 운영 중인 프로그램이죠? 채수민 님도 퇴원 후에 해당 프로그램으로 경험하셨고요.

네. 제가 대학교 3학년 말에 사고를 당해서 휠체어에 앉게 됐는데 복학해서 졸업하는 게 꿈이었어요. 복학이라는 목표 하나만 가지고 퇴원을 일찍 했고, 그러기 위해서 운전면허를 땄어요. 혼자 움직일 줄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일상홈 프로그램’까지 들어가서 생활적인 부분의 많은 팁과 테크닉을 배우고 왔죠.


지금은 졸업하셨나요?

네, 학점을 무사히 채워서 작년 말에 졸업했습니다.


실용무용과에서 힙합을 전공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힙합을 전공하면서 부수적으로 걸스힙합도 했었고, 코레오(choreography) 전공으로도 활동을 했었어요. 사실 힙합은 배틀 대회가 참 많은데, 저는 배틀 대회에 나가는 것보다 학과 동기생들과 같이 무대에 올라가는 게 더 재밌었어요.


댄스스포츠로 장르를 바꿀 때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댄스스포츠는 파트너가 있고 같이 호흡을 맞춰야 되잖아요. 그리고 워낙 춤 선이나 그루브, 리듬 자체가 많이 달라서 처음에는 그런 부분을 맞추기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파트너랑 연습할 때마다 어떻게 힘을 줘야 되는지, 내가 어떻게 버티고 어떻게 반동을 받아야 되는지, 그런 걸 많이 배웠고요. 지금도 배우고 있고 계속해서 호흡을 맞추고 있어요. 게다가 힙합은 노래에 따라 분위기가 바뀌는 반면, 댄스스포츠는 종목에 따라 이미 정해져 있는 그루브가 있기 때문에 그걸 배우는 게 아직도 조금 어렵습니다. 제가 아직 새내기여서요. (웃음)


댄스스포츠는 ‘라틴 댄스’와 ‘스탠더드 댄스’로 나뉘죠?

네. 스탠더드 종목은 왈츠, 탱고, 폭스트롯, 퀵스텝, 비엔나 왈츠의 다섯 가지가 있고요. 라틴 댄스는 삼바, 차차차, 룸바, 자이브, 파소도블레, 이렇게 다섯 종목이 있어서 총 열 종목이에요. 휠체어 댄스스포츠 같은 경우는 휠체어 선수끼리 파트너가 되는 듀오 종목이 있고, 휠체어 선수와 비장애인 파트너가 함께하는 콤비 종목이 있어요. 혼자서 하는 싱글 부문도 따로 있고요. 그 와중에 체전에는 단체전 종목이 따로 있는 거예요.


채수민 님은 라틴 댄스 선수고요.

감독님께서는 스탠더드를 해보지 않겠냐고 권하고 계신데, 저는 스탠더드 같은 우아한 성격은 아니기 때문에... (웃음) 저는 라틴이 더 재밌고 좋더라고요. 삼바나 자이브처럼 리드미컬한 종목을 더 재밌게 하고 있고, 음악조차도 흥겨운데요. 빠른 종목은 역시 힘이 들기는 해요. (웃음)




휠체어 댄스스포츠 선수가 되기 위해 

필요한 자질은 무엇일까.


채수민 님은 ‘의지’와 ‘성실’을 꼽았다. 


어딜 가나 중요한 부분이듯 댄스스포츠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 우문현답이었다.



휠체어 댄스 경기 중의 채수민 님 ⓒMissionit


대학생 때는 힙합 댄서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그렇죠. (춤을) 즐기면서 같이 마음 맞는 사람들이랑 크루를 만들어서 공연 다니고 무대에 올라가고, 저의 춤 스타일을 완전히 찾고 굳히게 되면 강사로도 일하고 싶었고... 여러 가지 꿈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잘 기억이 안 나요. 그때(사고 발생 전)도 사회에 나가기 전에 3~4학년 때의 복잡한 고민을 했을 때라... 생각하기 싫은가 봐요. 지금은 기억이 없네요. 지워졌나 봐요.


휠체어 댄스에 대해 알기 전까지, 고민하신 바가 있었나요?

사실 재활병원에 가기까지 제가 못 걸을 거라는 생각을 못 했어요. 옆 침상에 저랑 비슷하게 다친 여자애가 입원했었는데, 걔는 3개월 만에 걸었다고 해서 ‘나도 몇 개월 만에 걷겠지’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재활병원에 입원한지 3~4개월 넘어갈 때쯤 알게 된 거예요. ‘휠체어를 타고 또 다른 인생을 살아야 되는구나, 나의 삶이 방식이 조금 달라졌구나.’ 그때서야 인지하기 시작해서 이후에 또 3개월까지, 그러니까 재활병원에 입원해 있는 6개월 동안 ‘전공을 바꿔야 되는데 어느 과를 갈까? 내가 무슨 과를 가야 춤처럼 즐길 수 있는 걸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참 많이 했어요. 그때가 조금 우울한 시기였던 거죠.


처음 휠체어 댄스에 대해 알게 되셨을 때, 바로 하겠다고 하셨어요?

네. 댄스스포츠라는 건 정말 의외였지만, 우선 ‘댄스’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니까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멘토로 오신 분께도 참 여러 가지를 물어봤는데, 댄스스포츠의 세계는 조금 더 복잡하고 많은 분류와 규제와 룰이 있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참 어렵기는 한데, 즐길 수는 있겠지’라는 생각에 시작했어요. 이걸로 졸업 작품을 완성해서 학교를 졸업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춤을 출 때 제일 신경 쓰는 부분은 어떤 건가요?

‘중심을 잡아야 된다’는 거예요. 장애 정도에 따라 클래스(class)가 구분되는데, 저처럼 중심을 못 잡는 선수는 클래스1이고, 중심이 잘 잡히고 골반으로 휠체어를 조율할 수 있는 분들은 클래스2로 나뉘어져요. 저는 클래스1이라는, 조금 상태가 중한 정도의 선수이기 때문에, 밴드를 허리까지 고정해요. 그래도 중심이 안 잡히니까 더 중심을 잘 잡으려고 노력하고 있죠. 그게 최대 목표예요. 그리고 힙합과 달리 댄스스포츠는 구부정한 자세가 아니고 예쁘게 몸을 펴는 자세여야 하기 때문에 허리를 더 펴고 싶어서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번에 경기용 휠체어의 등받이를 새로 바꿨는데요. 계속 연구하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또 중심이 제대로 잡혀야 파트너가 나한테 반동을 줬을 때 더 잘 잡을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에 항상 고민하고 연습하고 있습니다.


지금 타고 계신 것과 달리 경기용 휠체어가 따로 있죠?

네. 병원에서 보시는 병원용 휠체어, 사회에 나와서 활동할 때 이용하는 활동용 휠체어, 그리고 (스포츠) 경기마다 그 종목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경기용 휠체어가 따로 있어요. 댄스스포츠 외에도 사격, 역기 등 종목마다 경기용 휠체어가 따로 있는데요. 댄스스포츠는 회전이 잘 돼야 되고 추진력이 좋아야 되기 때문에 바퀴가 조금 더 뉘여 있고, 뒤에 보시면 가운데에 보조 바퀴가 있어요.


휠체어 댄스 교육은 어디에서 받으셨어요?

연맹에 소속되는 순간부터 감독님께 배웠어요. 그리고 저를 데려가 주신 멘토 오빠와 그 분의 휠체어 파트너인 언니한테 배웠는데, 그 언니 분이 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을 하신 최문정 선수님이에요. 선수 생활도 하시면서 코치 일도 하시는 플레잉코치거든요. 그 분의 제자로 많이 배울 수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배우고 있어요.


가장 처음 춤을 시작하셨을 때, 그때는 춤이 왜 좋으셨어요?

어렸을 때 꿈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저는 어렸을 때부터 책상머리에 앉아 있는 걸 참 못했어요. (웃음) 책상에 앉아서 공부할 때면 항상 세상을 회피했어요. (웃음) 예체능은 좋아했는데 인라인 스케이트, 농구, 테니스, 수영, 육상 같은 건 너무 좋아했어요. 사실 부모님이 테니스 선수까지 해보지 않겠냐고 하셔서 계속 했었는데, 재밌게 하다가 나의 업(業)이 돼버리니까 자기만의 싸움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하다가 쉽게 질려 하더라고요. 그런데 춤은, 제가 방송 댄스부터 시작을 했는데, 음악에 맞춰서 이미 나온 안무를 추다 보니까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래서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나중에는 자신만의 싸움을 하겠지만, 지금 그 자체로 신나고 재밌어서 계속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아요.


댄스스포츠 선수로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는다면 언제일까요? 대회에서 수상했을 때?

아니요. 첫 대회에 나가기 전에 대기 줄에 서있을 때요. 무대에 올라가기 전까지 다 같이 대기하고 있다가, 줄 맞춰서 무대로 나가서 포즈를 잡고 있잖아요. 그때 파트너 오빠와 손을 잡고서 나가길 기다리는데 기분이 너무 이상했어요. 파트너와 같이 춤을 춰야 되고, 게다가 호흡을 맞춰야 되니까, 너무 이상한 거예요. 나가서 춤을 추는 순간까지 되게 어색했어요.


가장 짜릿하거나 기쁜 순간도 있었겠죠?

그렇게 첫 무대를 어색하게 끝내고 왔는데 다들 잘했다고 했을 때, 그때 조금 재밌고 신기하고 짜릿했죠.


‘휠체어 댄스스포츠 선수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뭐라고 답하시겠어요?

우선 의지가 강해야 돼요. 사실 초반에는 힘들 수밖에 없는 게, 활동용 휠체어를 밀다 보면 계속 (상체를) 앞으로 숙이기 때문에 등이나 어깨가 앞으로 굽혀질 수밖에 없는데, 그걸 펴야 되거든요. 그리고 동시에 성실하셔야 돼요. 그래야 조금 더 많은 부분을 얻어갈 수 있고, 또 (다른 분들이) 예쁘게 봐주시니까 더 많이 코칭을 해주시기도 하는 것 같아요. 어딜 가나 중요한 부분이고, 댄스스포츠에서도 똑같이 중요한 부분입니다.


채수민 님의 인터뷰 전문은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 2호 <직업>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