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사람들을 치료하는 배우가 되는 꿈을 꿉니다


김유남 배우, 지체장애


인터뷰 신연선

사진 영상 김은혜





김유남 님의 어머니는 자신과 같은 저신장장애를 가진 아들이 많은 세상을 경험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를 바랐다. 여러 커뮤니티에 어린 아들을 데리고 다녔다. 그 덕분인지 김유남 님은 사람들을 좋아하고, 관심을 즐기는 외향적 성격으로 성장했다. 고등학교 진로상담 시간에 담임 선생님이 개그맨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을 때 그는 그 일이 자신의 성향에 딱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20살, 예원예술대학교 코미디연극학과에 진학한 김유남 님은 이후 2015년, 연극 <급이 다르다>를 통해 배우로 데뷔했다. 뮤지컬 <언더그라운드>, <바넘, 위대한 쇼맨> 등에 출연하며 지금까지 배우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배우 김유남. 배우라는 직업으로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그의 큰 꿈은 “모든 사람들의 친구가 되는 것”이다.




김유남 님은 자신을 “통칭 저신장 배우, 

자칭 난쟁이 배우 김유남입니다”라고 소개한다.

 

배우라는 일의 ‘건방진 희열’을 이야기하는 

김유남 배우의 배우라서 

행복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좌. 급이 다르다 포스터 ⓒ신강수 

/ 우. 바넘 : 위대한 쇼맨 톰썸역 ⓒ킹앤아이 컴퍼니

스쿠터를 운전하는 김유남 님 ⓒMissionit


먼저 장애에 대해 듣고 싶어요. 어떤 장애를 가지고 계신지, 장애에 어떤 배경이 있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선천적 저신장 장애입니다. 부모님 유전으로 갖게 됐고요. 구체적으로는 ‘연골무형성증’이라고 해요. 성장이 느리고, 뼈가 약해서요. 몸무게에 눌리면서 다리가 휘는 식의 증상이 있어서 자주 수술을 해줘야 하는데요. 저는 배우 수명을 지키기 위해 수술을 조금 미루고 있는 상황입니다. 어렸을 때는 수술을 몇 번 했고요.


배우의 꿈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듣고 싶어요. 

처음 배우를 꿈꾼 것이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했던 개그맨이 되면 좋겠다는 제안이었던 거죠?

맞아요, 원래 꿈이 화가였는데요. 고등학교 진로 상담 때 담임 선생님께서 “너는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선생님들한테도 재미있게 잘 대한다, 개그맨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하셨어요. 그 말을 듣는데 요즘 말로 ‘관종’ (웃음)으로서 확 꽂혔죠. 그때부터 내 갈 길은 개그맨이라고 생각했어요. 개그를 하려면 연기도 필요하다고 해서 연기학원도 다니고요. 입시학원에 다니면서 준비한 끝에 예원예술대학교에 진학을 했습니다. 대학교에서 개그 공부도 하고, 공채도 몇 번 도전을 했었는데요. 그러다 정말 운이 좋게 배우로 데뷔를 하게 됐죠. 학교에 저와 같이 저신장인 선배가 있었는데 그분이 작가로 데뷔한 작품에 제가 주연을 하게 됐거든요. 그게 졸업하고 3개월 지난 시점이었고요. 그때 이후로는 연극과 공연에서 배우 활동을 하다가 지금까지 배우로 살고 있어요.


데뷔한 작품에 저신장 장애인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었고, 그 덕분에 나의 장애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게 됐다고 들었어요.

제목은 < 급이 다르다 >라는 작품인데요. 간단한 줄거리는 이래요. 저랑 친한 친구가 있는데요. 친한 친구는 군대를 안 가고 싶어서 급을 낮게 받으려고 하고, 저는 집안에 도움이 되고자 장애 등급을 높게 받으려고 해요. 그런 차이를 이야기하는 작품인데요. 사실 저는 그렇게 차별을 받은 기억이 별로 없었거든요. 여기저기 치이거나 놀림을 받은 적은 별로 없어서 연기하는 게 살짝 어렵긴 했어요. 그런데 무슨 말인지는 알겠더라고요. 제 경우는 배려가 더 편견이 되는 느낌을 받은 적이 많았어요. 그런 기억을 떠올리면서 연기했죠. 배우 활동을 시작하게 해준 소중한 작품이라 감사하게 생각하는 작품이에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할 수 있어서 배우라는 직업에 더 매력을 느꼈다고 말씀하신 점도 인상적이었어요.

배우는 어떤 직업도 다 해볼 수 있잖아요. 그게 되게 재밌는 것 같아요. 모든 배우 분들이 다 그러실 텐데요. 특정 직업의 역할을 맡으면 그 직업에 대한 기초 지식은 있어야 하거든요. 그러니까 공부를 하게 되는데요. 저는 그런 것들이 되게 재미있어요. 제 성향에도 딱 맞는 것 같고요.


거듭해서 새로운 역할을 하는 걸 어렵게 느낄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김유남 님은 재미있다고 표현하거든요. 어떤 마음일까요?

건방진 희열이랄까요. 무대 위에 선 순간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저만 보는데요. 이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여질지를 상상하는 동시에 내가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지 상상을 하는 게 저는 너무 재미있어요. 그러니까 제가 감히 관객들을 판단하는 거죠. ‘이렇게 보이려면 내가 이렇게 표현을 해야 된다’, ‘내가 이런 진실성으로 연기를 해야 된다’는 생각들이 있고요. 실제로 그렇게 연기를 했는데 관객 분들이 저의 의도대로 관람하는 게 느껴지면 엄청난 희열을 느껴요. 어쨌든 저의 판단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건방진 것 같기도 하지만요. 저는 희열을 느끼니 건방진 희열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조금 구체적으로, 어떨 때 특히 배우라서 좋다고 느끼나요?

뮤지컬 <바넘, 위대한 쇼맨>에 출연했을 때인데요. 거의 100회 공연을 원캐스팅으로 했어요. 그런데 반복이 되면 아무래도 무뎌질 수밖에 없잖아요. 제게도 그런 때가 왔어요. 스스로도 자괴감이 들고, 걱정이 많이 됐죠. 그냥 몸이 시키는 대로 연기를 하니까 역할에 완벽히 빠져들어서 표현하는 것에도 한계를 느꼈고요. 한 번은 진짜 너무 집중이 안 되는 거예요. 관객 분들께도 너무 죄송했어요. 그래도 일단 공연을 해야 하니까 무대에 올라갔죠. 공연 중에 독백 장면이 있는데요. 진짜 루틴처럼 대사를 내뱉고 있는데 갑자기 앞 줄에 앉은 관객 분들이 제 말 하나 하나에 다 눈물을 흘리시는 거예요. 놀랍게도 거기에서 제가 많이 도움을 받았어요. 관객 분들이 감정을 주니까 저도 감정을 끌어내게 되더라고요.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 순간 다른 안 좋은 감정들이 전부 해소가 되고 말이에요. 그런 희열은 배우라서 경험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김유남 님은 자기소개를 할 때 “통칭 저신장 배우, 자칭 난쟁이 배우”라고 말을 하잖아요. 어떤 마음으로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는 건지 듣고 싶어요.

흔히 사람들은 배우를 그 배우의 이름보다 배우가 맡은 캐릭터나 이미지로 기억해요. 그렇기 때문에 저라는 배우에 대해 사람들이 널리 아는 용어나 단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단어를 생각해봤어요. 그리고 ‘난쟁이’밖에 없다고 생각했죠. 이건 제가 기억되기 위해서 선택한 단어예요. 사람들한테 각인이 잘 되는 표현을 생각했을 때 ‘저신장’이라는 말은 많이 모르기도 하고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처럼 이 말은 흔히 퍼져 있는 명칭이라 기억하기 좋잖아요. 미국 영화배우 ‘피터 딘클리지’도 저신장 배우라는 말보다는 “있잖아, 거기 <왕자의 게임>의 그 난쟁이”라고 많이들 기억을 하죠. 저도 더 확실하게 기억이 되고 싶거든요. 한국에서 난쟁이 배우, 하면 김유남이 바로 나오도록 말이죠. 그런 생각에서 제 소개를 “통칭 저신장 배우, 자칭 난쟁이 배우”라고 하고 있어요. 사실 저는 세상 모든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싶단 말이에요. (웃음) 그러려면 내가 먼저 편하게 나를 이렇게 불러야 사람들이 나를 좀 더 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한편으로는 같은 장애를 가진 분들이 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싫어하진 않을까 생각도 들거든요. 혹시 그런 적은 없나요?

아직까지는 없어요. 솔직히 그런 반응을 들을까봐 무섭긴 해요. 그 말을 싫어하는 분들이 많으니까요. 하다못해 저희 어머니도 이 말을 별로 안 좋아하시거든요. 그런데 결국에 답은 이거예요. 내가 난쟁이니까요.


어머니는 뭐라고 하세요?

그런 말 좀 하지 말라고 하시죠. 그렇지만 저는 그래요. “엄마, 어때? 난쟁이로 기억되는 게 좋지! 그냥 김유남 배우라고 해서 일도 없고 그런 것보다는 난쟁이 배우라고 해서 돈 많이 벌어오는 게 좋잖아”라고요. (웃음)


일상생활에서는 당연히 차별적인 언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하지만 배우의 특수성이 있다는 생각도 드네요. 

배우로 활동하면서 이 언어를 내가 가져오는 거죠. 웹드라마 제작을 한 적이 있어요. 프로필 투어를 다닐 때는 몰랐는데요. 제가 프로필을 받는 입장이 되어 보니까 수많은 프로필 가운데 시선이 가는 것은 그런 특징이었어요. 그때부터는 더 저를 난쟁이 배우라고 말하게 됐어요.




오래 운전한 탓에 베스트 드라이버가 되었다는 김유남 님. 

가림막으로 인해 좁은 길에서도 자유로운 운행을 할 수 있다.

 ⓒMissionit


김유남 님에게 가장 유용한 보조도구로는 어떤 것이 있나요?

“전동 스쿠터를 11살 때부터 사용했어요. 지금 사용하고 있는 것은 얼마 전에 새로 뽑았는데요. 아주 만족스러워요. (웃음) 제가 제일 많이 사용하는 게 바로 이 전동 스쿠터일 거예요. 저처럼 왜소증이면서 연골무형성증인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걸으면 걸을 수록 연골이 빨리 닳아요. 그래서 운동이나 활동 같은 것을 많이 안 하는 게 좋거든요. 이런 상황인데 전동 스쿠터 덕분에 더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죠. 어쨌든 많은 장애인 분들이 이동에 대한 제약이 많아요. 장애인 콜택시가 잘 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시간을 지키기가 너무 어렵고요. 언제 잡힐지도 모르고, 교통상황도 문제죠. 그런데 저는 전동 스쿠터 덕분에 정말 편하게 이동하고 있어요.


또 저신장 장애인들은 높이 있는 물건을 못 꺼낸다고 생각을 많이 하실 텐데요. 당연히 내 집에서는 물건을 높이 안 놔둡니다. (웃음) 그래서 특별히 필요를 못 느끼긴 하지만요. 한 손에 들어갈 수 있는 휴대용 사다리가 있다면 들고 다닐 수는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필요성을 느끼진 않지만요.”



김유남 님의 인터뷰 전문은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 2호 <직업>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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