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필요에서 '모두'의 필요로


함정균 영상 크리에이터, 지체장애


인터뷰 임나리

사진 영상 김은혜





앞서 걸어간 이의 발자취는 뒷사람들에게 길잡이가 되어준다. 함정균 님이 지나온 길들도 그랬다. 마술사로 10년 동안 활동하던 그는 교통사고로 중추신경이 손상되어 척수장애인이 됐다. 휠체어 사용자로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환승 과정이 쉽지 않았고, 이를 영상으로 촬영해 자신의 유튜브 채널 <함박 TV>에 올렸다. 영상은 휠체어·유아차 이용자를 비롯한 많은 교통 약자들이 지하철을 이용하는 데 도움이 됐다. 이후 영상 크리에이터로서 변모한 함정균 님은 2년 6개월에 걸쳐 서울, 경기, 인천 지하철 93개 역에 대한 환승 영상을 촬영했고, 현재도 저상버스 이용과 무장애 여행의 과정을 담아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나에게 필요한 무언가는 다른 누군가가 

필요로 하는 것이기도 하다.


함정균 씨의 ‘지하철 환승 영상’도 

처음에는 자신을 위해 제작한 것이었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 되는 콘텐츠가 됐다. 


사회의 관심과 지지는 

그가 활동을 이어가는 데 큰 힘이 된다.




유튜브 채널 <함박 TV>는 언제부터 운영하셨어요?

2016년 5월 30일에 처음 채널을 만들었고요. 2016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하고 있어요. 그때 우리나라에서 유튜브 붐이 막 일어나려고 할 때였는데, 당시에 저는 가지고 있는 마술 영상이 너무 아까워서 유튜브를 시작하게 됐어요.


마술사로 10년 동안 활동하셨죠. 교통사고 이후에 직업과 관련해서 많은 고민을 하셨을 것 같아요.

사고 직후에는 고민을 많이 했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이 점점 늘어났어요.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손가락을 조금씩 움직일 수도 없었으니까요. 시간이 지나도 회복이 안 되는 부분도 있었고, 회복이 되더라도 굉장히 더딘 부분도 있었어요.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둘씩 포기를 하게 되는데, 그중에 거의 1순위가 마술이 되더라고요. 마술을 하고 싶어도 손가락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니까 아무래도 안 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제 삶에서 마술이 빠져나가게 됐어요.


처음 유튜브 영상을 만드신 이유는 ‘대중교통 이용의 불편함’ 때문이었나요?

병원에서 퇴원을 하고 일상생활을 하는 중에 지하철 환승을 해야 되는 상황이 있었어요. 휠체어를 타고 내려가야 되는데 엘리베이터를 못 찾겠는 거예요. 그 시간이 30분 이상 걸린 적이 정말 많았고, 그런 경험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까 ‘이건 좀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늘 똑같은 장소로 가면 기억이라도 할 텐데, 역마다 환승 경로나 장소가 다 다르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이걸 영상으로 촬영해서 내가 기억이 안 날 때 봐야겠다’라고 생각해서 하나씩 환승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던 거예요.


이후에 본격적으로 영상을 제작하게 되셨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영향을 미쳤을까요?

네. 반응이 없었으면 아마 몇 개 제작하다가 말았을 거예요. 그런데 의외로 관심 갖는 사람들이 있고 댓글도 달리더라고요. ‘누군가 영상을 보고 관심을 갖는구나’라고 생각해서 그때부터는 편집을 하면서 영상을 조금 다듬기 시작했죠. 아마 2016년 연말~2017년 연초쯤이었을 거예요.


여러 기관에서 영상 관련 교육을 받으셨다고요.

네, 세 군데에서 받았고요. 2017년에는 서울시청자미디어재단, 2018년에는 방송콘텐츠진흥재단, 2019년에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교육을 받았어요. 한 3년 정도 교육을 받으니까 어느 정도 완성도 있는 영상을 만들게 됐어요.


교육생 중에 장애인도 있었나요?

교육을 받을 때마다 제가 유일무이했어요.


비장애인들 사이에서 교육받으면서 불편한 점은 없었나요?

한 번은 교육장에 갔는데, 교육받는 곳이 계단인 거예요. 동료들이 양쪽에서 저를 부축해서 올라갈 수 있었어요. 그리고 입구가 좁아서 휠체어가 들어가는데 조금 어려운 경우도 있었고요. 또 화장실 문제가 가장 중요한데, 장애인 화장실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큰 관공서 건물을 찾아 헤매야 하는 상황이 있었어요. 그런 환경적인 부분들이 조금 어려웠어요. 교육 끝나고 밥 먹으러 가야 되는데 식당을 찾기가 너무 어려울 때도 있었고요.


영상 촬영과 편집을 배우는 과정은 어떠셨어요?

환경적인 부분들 때문에 컴퓨터 교육은 따로 받지 않았어요. 책상들이 다 좁고, 휠체어를 탄 채로 앉아서 작업하기 어려운 상황들이었어요. 그래서 교육생 옆에 휠체어를 세워놓고 어떻게 하는지 눈으로만 봤죠. 실습은 못하고요. 눈으로만 보고 그걸 기억했다가 적용해보고, 그런 식으로 했어요.


지금은 영상 관련 강의도 하시죠?

작년에 장애인들 대상으로 교육을 했어요. 코로나 상황이기는 했지만 온라인 수업과 오프라인 수업을 병행해서 진행했고요. 장애인 관련 크리에이터 교육이 조금씩 늘어나는 걸 느낄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코로나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까 활성화되지는 않는 것 같더라고요.


<함박 TV>에 올라오는 영상은 모두 직접 편집하세요?

네.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 직접 하는 이유는, 첫째로 제가 편집하는 걸 좋아해요. 재미있어 해요. 그래서 그렇게 하는 거고요. 촬영 같은 경우는 도움을 조금 받아요. 제가 촬영할 수 없는 구도들이 많거든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카메라를 거치해두고 촬영하거나, 가끔 제 손으로 힘들게 촬영하는 건데, 그렇게 하면 영상이 재미가 없어요. 그래서 아내나 저희 아이들한테 촬영해달라고 부탁을 하죠. 그러면 영상이 조금 풍성하게 느껴지는데, 제가 촬영한 것만 가지고 편집하면 너무 재미없어요.


지금도 휠체어에 360도 카메라가 장착되어 있는데요. 주로 사용하시는 카메라죠? 휴대폰 카메라도 쓰시고요.

네. 그리고 미러리스 카메라 한 대가 더 있어요. 여행 영상을 촬영할 때는 그걸 반드시 가지고 가요. 조금이라도 영상 품질을 높이려면 미러리스 카메라를 써야 되거든요. 그냥 간단한 브이로그는 휴대폰 카메라와 360도 카메라만으로 촬영해도 충분하고요.




<함박 TV>의 영상들은 휠체어 이용자가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여행을 하고,

일상을 보내는 모습을 가감 없이 담고 있다. 

그 시간들을 눈으로 좇는 것만으로도 장애인, 교통 약자가 마주하는 상황들에 대해알게 된다. 

함정균 님이 ‘나는 생활 인식 개선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이유다.




성북구 일대를 보행하는 함정균 님

 ⓒMissionit


<함박 TV>를 대표하는 콘텐츠는 ‘지하철 환승 영상’이 아닐까 싶어요. 가장 많은 사람들이 본 영상일 것 같고요.

그게 제일 커요. 지하철 환승 영상 같은 경우에는 2년 6개월 동안 서울, 경기, 인천 지하철 93개 역의 환승 영상을 230개 정도 촬영했거든요. 더 빠르게 찍을 수도 있었을 텐데, 2년 6개월 정도 걸린 이유는, 어느 날 아내가 그러더라고요. 도대체 돈도 안 되는 환승 영상은 왜 찍냐고. (웃음) 그때 조금은 허탈감이 와서 몇 개월 쉬었어요. 그러다가 언론사, 방송에서 연락이 오면 ‘그래도 내가 하는 일이 의미가 있나 보다’라고 생각돼서 또 하게 됐고요. 그렇게 해서 계속하다 보니까 마지막까지 촬영을 마치게 됐어요. 최근에는 많은 분들이 버스 영상에 관심을 가져주세요. 재작년 말에 영상을 올렸는데, 지금 조회수가 95만 회 정도 돼요.


2년 6개월 동안 이어진 ‘대장정’이었네요. 이 작업이 사회적으로 기여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끝까지 계속할 수 있으셨겠죠?

맞아요. 언론이나 방송에서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면 아마 중간에 포기했을 텐데, 그 관심이 ‘내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구나’ 하고 되새겨주는 역할을 해줬어요. 그래서 저한테는 언론, 방송에 계시면서 관심을 가져주신 분들이 소중하죠.


‘지하철 환승 영상’은 많은 교통 약자들에게 도움이 된 것 같아요.

특히 유아차를 모는 분들께 큰 도움이 되고 있고요. 그래서 ‘내가 장애인이지만 비장애인을 돕고 있구나’라는 기쁜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물론 휠체어를 타는 분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고 있죠. 휠체어를 탄 장애인분들이 고맙다고, 잘 보고 있다고, 영상 덕분에 환승 잘 하고 있다고 응원을 해주셔서 저는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장애 인식 개선에도 기여하는 바가 큰 것 같습니다.

장애인 단체에 계신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자네는 지금 생활 인식 개선을 하고 있다’고요. 생활 속에서 인식 개선을 하고 있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렇지, 내가 그렇게 하고 있지’ 싶었어요. (웃음)


브이로그 영상에는 자녀 분들도 등장하는데요. 아빠가 하는 일의 의미를 잘 알고 있죠?

나름대로 아이들도 생각이 있었나 봐요. 뜻깊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실제로 방송 인터뷰에서도 직접 자기 생각을 이야기한 걸로 봤을 때, 아빠가 하고 있는 일을 좋게 평가하고 있더라고요.


자녀들과 같이 떠난 여행을 담은 영상도 많아요. 보면서 굉장히 부러웠습니다. (웃음)

오히려 제가 다쳐서 아이들한테 더 관심을 갖는 것 같아요. 다치기 전에는 마술사로 활동하다 보니까, 하다못해 어린이날도 공연하러 갔거든요. 크리스마스에도 아이들 관련된 행사에 참석하느라 정작 우리 아이들하고는 같이 있지 못하는 상황이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오히려 다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들 입장에서는 아빠가 다친 게 조금 싫죠. 몸으로 같이 놀아줘야 되는 시기에, 아이들이 딱 일곱 살이 될 때 제가 다쳤으니까요. 그런데 뭐, 이미 벌어졌는데 어쩌겠어요. 받아들여야죠.


예전부터 여행을 좋아하셨어요?

그렇죠. 원래 여행을 좋아했었고, 어렸을 때는 늘 부모님, 동생과 배낭을 메고서 여행을 다녔던 것 같아요. 성인이 돼서는 일 때문에 자주는 못 갔는데, 그나마 직장에서 전국을 다니는 일을 조금 해서 많이 다녔고요. 마술사로서는 국내에서 제주도까지 전국을 다니면서 공연을 했었고, 해외에서는 중국, 대만, 일본, 미국을 다니면서 공연을 했어요. 그런 역량이 있어서 여행하는 것에 부담감은 조금 없고요. 가족들하고 같이 여행을 가면 돈이 많이 들잖아요. 그런 부담감이 있을 때는 관련된 공모전이 있는지 살펴보고, 만약에 있으면 겸사겸사 가는 거죠. 놀러 가서 촬영한 영상을 공모전에 내서 당선이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그렇게요.


<함박 TV>에는 ‘무장애 여행’ 콘텐츠도 있는데요. 우리나라가 무장애 여행을 하기 좋은 환경은 아니죠?

네. 좋지 않죠.


그럼에도 정말 많은 곳들을 여행하셨어요.

운이 좋아서 팸 투어(FAM tour)를 간 적도 있었고, 얼마 전에는 인천 강화도를 다녀왔는데요. 그런 여행을 가기가 조금 어려운 게, 첫 번째는 접근성 때문이에요. 절 같은 데는 계단이 많다 보니까 조금 쉽지 않고요. 두 번째는 식당인데, 배고픈데도 불구하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을 찾느라 시간을 많이 낭비할 때가 있어요. 그리고 세 번째로 화장실이 되게 중요해요. 그게 해결이 안 되면 여행 중단이거든요. 그래서 그런 부분들을 먼저 다 조사를 하고 괜찮은 곳들만 가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려운 부분들은 있죠. 저한테 꽤 괜찮은 여행지는 접근성, 식당, 화장실의 삼박자가 잘 갖춰진 곳이고, 어려운 여행지는 그중에 하나라도 빠진 곳이에요.


‘접근성’ 하나만 보더라도 정말 많은 요소들이 포함돼 있잖아요. 교통수단, 진입 턱이나 경사로의 유무, 비포장도로나 좁은 길 등.

접근성 중에서 제가 가장 핵심으로 꼽는 게 이동이에요. 이동 접근성. 그나마 경기도 지역은 일부라도 지하철이 있어서 지하철을 이용해서 갈 수 있는데요. 경기도권을 벗어나면, 충청도라든지 전라도 쪽은 조금 어려움이 있어요. 경상남도 쪽, 김해라든지 부산 같은 경우는 그나마 지하철이 다 이어져 있어서 갈 수 있는데 그 외의 지역으로는 조금 어렵고요. 제주도는 공항, 서귀포 쪽은 대중교통 중에서 버스가 되게 잘 되어 있어요. 그래서 괜찮은데 그 외에는 버스나 지하철이 안 돼 있는 곳들이 너무 많아서 조금 힘들죠. 제가 버스, 지하철에 집중을 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가 있어요.


어떤 이유인가요?

저처럼 중증 장애인은 보통 특별교통수단으로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하거든요. 그런데 지금 장애인 등록제가 폐지됐지만 아직도 살아있어요. 제가 처음에는 1~6급 중에서 2급을 받았어요. 그런데 일상생활을 많이 하다 보니까 몸이 조금 좋아져서 재심 받을 때는 3등급으로 떨어졌어요. 상지가 4급, 하지가 5급으로 종합 3급이에요.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으로 판결된 거예요. 그런데 옛날 등급이 적용돼서 4급이 아니고 3급이 돼야 특별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어요. 저는 상지가 4급이라 해당이 안 되다 보니까 거의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이용을 못하고 있어요. 그나마 이용할 수 있는 데가 성남시예요. 성남시는 3급까지 가능하더라고요. 얼핏 알기로는 제주도도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거기는 다시 한번 확인을 해봐야 해요. 그러니까 저와 같은 경우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거죠. 저는 휠체어가 없으면 아예 이동이 불가능한 장애를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특별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없는 현실이 많이 어려워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대중교통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함정균 님의 인터뷰 전문은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 2호 <직업>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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