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사회에 준비된 지속 가능한 도시
폴 크리스 & 유코 아라이
세계은행 도시개발 담당관
인터뷰 미션잇 편집부
사진제공 Worldbank
폴 크리스Paul Kriss와 유코 아라이Yuko Arai는 각각 세계은행 수석 도시개발 담당관Lead Urban Specialist와 도시개발 담당관Urban Specialist으로 재직 중이며, 인구 고령화로 인한 도시의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세계 곳곳의 국가들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에 위치한 중소 도시, 도야마시Toyama City의 성공 사례를 통해 고령자뿐만 아니라 어린이와 장애인까지 포용할 수 있는 도시계획을 연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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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은행 도시 전문가로서 어떤 역할을 맡고 계시는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유코 아라이: 저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근무하고 있고, 도시개발과 도시계획, 포용적인 도시설계와 관련된 일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고령화 관련 프로젝트도 많이 하는데 주로 도시계획과 대중교통을 결합하는 프로젝트예요. 제가 근무하고 있는 인도네시아를 포함해서 주로 저소득 국가의 다양한 프로젝트에 세계은행 자금을 조달하고, 도야마시와 같은 사례를 분석하는 지식 창출 프로젝트도 맡고 있고요.
폴 크리스: 저는 수자원 프로젝트와 농업 관련 산업을 주로 하고 있지만 전문 분야는 도시 인프라입니다. 세계은행에서 근무하면서 중국, 브라질, 아프리카, 미국 등 여러 국가에 살았고 지금은 파리에서 일하고 있어요. 개발도상국을 포함한 다양한 국가들이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실행할 때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잘 알고 있죠. 도야마시 사례를 분석할 때도 각 나라의 상황과 맥락에 따라 적용이 다를 수도 있다는 점에 유의하려고 했고요.
세계은행은 도야마시와 같은 ‘고령화 사회에 준비된 도시Age-Ready Cities’를 연구하고 있어요. ‘준비된 도시’란 무엇인가요?
유코 아라이: 세계은행은 각 도시가 고령화 사회에 효과적으로 대비할 수 있도록 총 7가지 영역51을 중점적으로 제안하고 있어요. 다양한 세대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간, 접근성이 좋은 대중교통수단 등을 갖춘 도시가 준비된 도시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고령화가 한참 진행된 이후보다, 도시설계 초기에 이런 요소를 미리 고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도시 접근성을 높이는 것도 좋지만, 이런 디자인 원칙을 나중에 적용해서 기반 시설을 개조하는 것보다는 설계 초기에 포함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죠. 예를 들어 인구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일찍 산업화를 이룬 나라예요. 도시설계가 청년에게 맞춰서 이루어졌죠. 그러다 고령화가 점점 진행되면서 대대적인 도시 개조 과정을 거쳐야 했어요. 도야마시처럼요. 일본의 도시가 한창 성장하던 1950, 60년대에는 인구 고령화라는 변화를 미처 내다보지 못했던 거죠. 일본뿐만 아니라, 이곳 인도네시아처럼 아직 젊은 인구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나라들과 도시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도 늘 같은 말씀을 드려요. 유니버설 디자인 요소를 미리 고려해서 도시의 건물, 도로, 운하를 설계하면 나중에 큰 비용을 들여서 개조할 필요가 없다고요.
폴 크리스: 고령자가 살기 좋은 도시는 무엇보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계은행이 말하는 포용적인 도시란, 도시개발 과정에서 당사자의 의견을 충분히 고려한 도시예요. 중국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면서 정부가 전통 가옥을 허물고 고층 건물을 짓는 모습을 많이 봤어요. 도시 외곽에 각종 편의시설을 갖춘 신축 아파트를 짓고 고령자들을 그곳에 이주시켰지만,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았어요. 단골 빵집, 정육점, 옆집 이웃들이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죠. 환경은 나아졌지만, 고령자 개인의 삶은 산산조각 났다고 할 수 있어요. 고령 세대를 위한 도시에는 인간적인 면모가 남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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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에 준비된 도시’의 7가지 영역 중에 ‘포용성’이 포함되어 있어요. 포용적인 도시계획이란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폴 크리스: 고령자를 포함한 도시의 다양한 구성원들을 의사 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시키는 것을 말해요. 도야마시의 도시계획도 상당히 포용적이었죠. 도시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당사자들이 무엇을 원하고, 원하지 않는지 정확하게 이해해야 해요. 마을 회의를 개최해서 정부 계획을 발표하고 주민들의 의견을 듣는 민주적인 절차가 중요하죠. 저는 항상 당사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요.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마다 현지 사람을 반드시 만나려고 하고요. 정부에서 좋은 일을 하려고 해도 주민들은 원하지 않을 수도 있죠. 다수의 의견을 존중해야 포용적인 도시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도야마시 관계자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어요. 도심 활성화 정책 덕분에 도시가 다시 활기를 찾았지만 최근에는 포화 상태에 이르렀고 물가와 집값이 너무 올랐다고 들었어요. 이런 부작용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유코 아라이: 물론 도야마시 관계자의 관점도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부동산 가격 상승을 부작용으로 볼 수도 있고요. 하지만 저는 조금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어요. 만약 콤팩트 시티 정책을 도입하지 않았다면 인구 밀도가 점점 낮아지고 수요가 없는 상태가 지속되었을 거예요. 도심에 수요가 없다는 건, 곧 자본 가치가 0에 가깝다는 말이나 다름없죠. 그래서 수요가 증가하는 것 자체가 결코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 물가가 지나치게 오르지 않게 이를 상쇄하는 정책도 중요하죠. 하지만 인구 포화 상태에서 나타나는 부작용보다, 인구 밀도를 올리지 못했을 때 발생하는 부작용이 훨씬 크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현재 일본에서는 도쿄를 제외하고 인구가 증가하거나, 적어도 감소하지 않는 도시는 찾아보기 힘들어요. 그러니까 도야마시에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건 사실 엄청난 일이죠.
고령자 친화적인 도시를 연구하고 계세요. 고령자는 어떤 공간에서 나이 들길 원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유코 아라이: 세계은행에서 한국 사례 연구도 진행한 적이 있어요. 한국 고령자들이 도시에 사는 것을 더 선호한다는 사실을 알고 정말 놀랐어요. 결국 접근성, 이동성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외곽에 살면 이동이 불편하기 때문에 시골에 비해 도시가 더 편하죠. 한국 사례를 분석하면서 고령자들은 돌봄 시설이 있는 지방보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사는 서울을 더 선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고령자 전용 커뮤니티에 살게 하거나, 다른 사회 구성원들과 분리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죠. 앞서 말한 세대 간의 유대감 형성의 중요성과도 연결되고요.
폴 크리스: 저도 어느새 은퇴 후 어디에서 살지 고민할 나이가 되어서 이 질문에 굉장히 공감합니다 (웃음). 저는 글로벌 도시를 좋아해요. 세계 곳곳에서 모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에요. 지금 살고 있는 파리도 접근성이 좋고, 도심도 작지만 활성화되어 있어요. 박물관, 좋은 음식, 문화와 공연이 있는 곳에 재미있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마련이죠. 나이가 든다고 해서 취향이 바뀐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뉴욕에서 학교에 다녔는데 은퇴 후에도 비슷한 환경에서 살고 싶어요. 근사한 곳에서 와인 한 잔 마시고 작은 서점에 가서 종이책 냄새를 맡으며 저녁을 보내는 그런 삶을 꿈꾸죠.
정책이라는 소프트웨어와 인프라라는 하드웨어를 창의적으로 결합하려는 시도도 중요해요.
예를 들어 고령자를 위한 커뮤니티 시설을 짓더라도 세대 간의 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는 정책을 고민해야 하죠.
폴 크리스&유코 아라이의 인터뷰 전문은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 5호 <시니어>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