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요구를 가진 아이들이 함께
노는 것은 성장의 기회
정유진 소통과지원연구소 실장
인터뷰 김병수
사진 김은혜
인터뷰 중인 정유진 님 ⓒMissionit
함께 만나는 환경이 주는 긍정적인 자극
자녀인 재현 씨가 2000년대 초에 미국에서 다닌 유치원은 장애 비장애 통합과정으로 운영되었다고 들었어요. 그 경험이 궁금합니다.
어른들의 시각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지만 아이들은 다 같이 놀아요. 자유롭게 놀이를 하는 환경에서 물론 돌발상황이 있을 수 있죠. 그런 상황을 못 견디는 아이들도 있고, 순발력이나 융통성 있게 타협하는 아이들도 있고, 또한 스킬이 부족한 아이들은 충돌이 생기기도 하고요. 그런 충돌이 장애아동에게서만 발생되는 건 아니에요. 요령을 익히지 못해 부딪히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아이, 장애로 인한 어려운 의사소통으로 손이나 발이 먼저 나가는 아이 등 대부분의 유치원 아이들에게서 자연스럽게 보이는 행동이고 발생되는 충돌이라 그것을 장애와 비장애로 분류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장애가 있는 아이와 비장애아이가 함께 노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어떤 유익이 있을지 궁금해요.
앞서 언급했듯 두 아이가 노는 것이고 성향이 비슷한 아이가 만날 수도 있는 반면 수동적인 아이와 리드하는 아이가 만날 수도 있죠. 부모님들 입장에서는 ‘우리 아이는 장애가 있다’ 또는 ‘우리 아이는 장애가 없다’로 쉽게 생각할 수 있는데 아이들의 놀이는 다양한 아이들이 다양한 놀이 파트너로 만나 여러 가지 변수가 발생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놀이를 통해 여러 가지 상황을 경험하는 것 자체가 큰 성장의 기회라고 봐요. 변수가 많은 환경에서 여러 성향을 지닌 파트너와 함께 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좋은 자극이고 우리 아이의 성향을 알 수 있는 계기도 되죠. 아이들뿐만 아니라 교육하고 지도하는 선생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예요. 비슷한 아이들만 보기보다는 다양한 요구를 가진 아이들을 만나면서 본인도 성장할 기회가 많아지고 놀이의 중간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맡게 되면 업무 수행도 능수능란해지겠죠. 그래서 전 모두에게 좋은 영향이 가게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다양한 친구를 만나는 환경에 아이들이 조금 더 많이 노출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들은 스스로 놀이를 만들어 갑니다
자녀인 재현 씨와 함께하시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놀이가 있으신가요? 재현 씨가 성장하고, 발달에 자극을 줄 수 있었던 놀이요.
놀이의 개념을 어디까지 생각할 것인지에 따라 달라질 것 같아요.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는 치료를 받는 것에 집중했었어요. 치료를 위해 이사를 했는데 주차가 어려워 대학교 교정을 지나는 지름길로 걸었죠. 그 때 재현이가 걸으면서 꽃도 보고, 나무도 만지고, 뛰다 걷다 넘어지고. 학문적으로 놀이를 정의할 수 없지만 재현이는 그것을 놀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해요. 저는 걷는 것에 불과했지만 재현이 입장에서는 새로운 환경에 노출되면서 스스로 재미를 찾는 시간이었죠. 때로는 넘어져도 “혼자 갈 거예요.” 등 표현능력도 늘고 사회성도 늘면서 이 시기에 아이가 전체적으로 많이 컸어요. 그래서 노출되는 시간을 조금만 가져보면 아이들이 스스로 놀이를 만들어 갈 거라 생각해요.
정형화된 것과 구조화되지 않은 놀이의 균형을 맞춰가는 것이 중요
장애가 있는 아이들한테 어떤 놀이가 더 필요할까요?
아이들의 특성에 따라 다른 거라서요. 예를 들면 레고블록은 비정형적인 놀잇감으로 좋고 또한 고도의 인지활동이죠. 그런 활동에 제한이 있는 장애를 가진 아이들, 특히 지적장애아이들의 경우에는 본인이 성을 만들고 다리를 만드는 등의 블록을 연결해서 어떤 모양을 만든다는 고난도의 사고가 어렵죠. 지적장애아이인 재현이에게 블록을 사줬는데 손에 쥐고 들고만 다니는 거예요. 어떤 모형을 만드는 것은 많이 어려웠어요. 이 아이의 수준이 구체적인 모양으로 블록을 구상하기 어렵기 때문에 지적장애아에게는 오히려 모양이 어느 정도 만들어진 장난감이 좋다는 거예요. 토마스기차 장난감처럼 기차 모양이 이미 만들어져 있는 장난감은 구체적인 캐릭터이고 간단한 조작만으로 멋진 기찻길이 완성되는 반구조화된 놀잇감이라 좋죠.
성인 발달장애인을 위한 제품과 놀이의 필요성
성인 발달장애인분들을 위한 제품도 고민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아이들은 예를 들어 타이어 유형, 타이어 퍼즐, 타이어 인형 등을 좋아하고 거기에서 즐거움을 찾는데 성인발달장애인에게는 맞지 않는다는 게 제일 안타까운 부분이죠. 성인분들은 놀이라고 하는 개념이 많이 달라요. 성인이 놀면 ‘백수냐?’하는 시선부터 놀이의 개념이 고민되더라고요. 성인발달장애인 프로그램을 보면 아이들이 갖고 노는 뽀로로, 타요 같은 거 그대로에요. 그래서 성인분들에게는 일상과 조금 더 가까운 것 중에서 변형한 것들을 맞춤형으로 만들어서 주고 있어요.
놀이는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관심의 흐름에 따라 들어가는 것
아이의 놀이에 부모는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요?
아이들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혼자 살고 싶어하는 경우라면 본인만의 가상의 성을 만들고 있기 때문에 어느 때가 되면 초대를 할 거예요. 그 놀이 중에는 잠깐 밖에 가 계세요. 그 흐름에 따라 들어가면 되는 거예요. 같이 노는 즐거움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해 혼자 고군분투하는 아이들도 있어요. 이런 경우에는 어른이 확실히 그 놀이에 들어가거나 아니면 어른의 놀이에 아이를 초대하는 식의 의도적인 것이 필요하죠. 먼저 어떤 상황이냐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한데 장애를 갖고 있다면 부모님들이 내버려 둘 수 없어서 조바심이 생기니까 끌어내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 분들께 추천드리는 방법은 아이들을 놀이에 끌고 오려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놀이에 들어가는 것이에요. 아이가 무슨 성을 만들었고 어떤 울타리를 쳤는 지를 ‘똑똑똑’ 조심스럽게 노크하고 들어가는 형식으로 시작하면 제일 좋아요. 처음에는 아이를 따라가거나 아이가 누우면 같이 누워요. ‘내가 너의 파트너가 될 건데 지금 나 너랑 비슷하게 놀아. 나 너랑 비슷하지 않아?’ 이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놀이공원에서 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서 같이 길바닥에 드러누워서 아이와 대화를 하는 직원 이야기를 하셨는데, 종합하면 정말 아이의 시선에 맞추어야 하는군요.
맞아요. 우리가 통상적으로 ‘아이들에게 눈높이를 맞추라’는 말은 쉽게 할 수 있죠. 하지만 정말로 눈높이를 맞추는 건 같이 누워 시선을 정확하게 맞추는 것, 이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이는 부모와 계속 같이 놀기를 원하지만, 부모는 아이가 혼자 놀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잖아요.
그때 밸런스를 어떻게 맞춰야 할까요?
이런 경우는 아이가 시도 때도 없이 붙는 거잖아요. 그럴 때는 혼자 노는 용도와 같이 노는 용도로 놀이나 놀잇감 자체를 분류하는 요령을 추천해요. 예를 들면 보드게임처럼 같이 놀 수 있는 제품이 있고, 아이가 혼자 역할 놀이를 할 수 있는 장난감이 있다면 분류해서 놓는 거죠. 그래서 아이가 정해진 시간 동안 충분히 혼자 놀고 있다면 어른이 먼저 혼자 노는 아이에게 이제 같이 놀자고 제안을 할 수도 있고요. 아이가 시도 때도 없이 같이 놀자고 하는 것은 같이 제대로 놀지 않아서 떨어지기 아쉬워서란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 같이 노는 것과 혼자 노는 것으로 놀잇감을 분류하고 시간대를 나눠 그 일상을 몸에 익히게 하는 것이 좋아요.
정유진 님의 인터뷰 전문은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 3호 <놀이>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