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을 고려하는 놀이 풍경
서민우, 지정우 건축가
인터뷰 김병수
사진 이유에스플러스건축
ⓒ이유에스플러스건축
놀이터가 아닌 놀이 풍경을 담는다
오랜 기간 아이들을 관찰하시면서 놀이터를 디자인하셨는데요. 두 분의 시선에서 놀이공간에 접근하는 방식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서민우: 놀이터는 아이들을 위해서 건축가가 제공할 수 있는 최상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에요. 놀이터가 아이들의 놀이를 위한 공간이 될 수 있지만 친구와 싸워서 혼자 마음을 추스르기 위한 공간이 될 수도 있죠. 저희가 생각하는 놀이공간은 아이들이 그 안에서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면서, 편하고 안전하게 보호받는 곳이에요. 이런 시각에서 만드는 놀이공간은 분명 기존의 놀이터와 차이점이 있겠죠.
지정우: 클라이언트가 ‘다른 놀이터 디자인대로 해주세요.’ ‘놀이터 디자인 잘하신다면서요.’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여져요. 왜냐하면 아이들을 위한 공간은 아이들이 놀면 놀이터가 되고, 어른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면 카페 같은 공간이 되듯 그야말로 생활 자체를 담는 곳이거든요. 그래서 작은 공간이지만 시내 전체에서 위치를 고려하죠. 주변에 산이나 강부터 시작해서 그 동네의 건물 재료, 역사 등을 다 살펴봐요. 심지어 조선시대 지도부터 그곳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도 알아보고요. 아이들이 가족들과 어떻게 생활하는지도 알기 위해 온라인, 오프라인 설문조사, 워크숍 등 방법을 총동원하죠. 작은 공간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생활의 전부일 수 있거든요. 그곳에서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만들어질지 궁금해요. 그만큼 여지를 많이 남겨두는 공간이라 저희는 놀이터가 아닌 놀이 풍경을 디자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풍경이라고 하면 정해진 물건이나 하나의 공간이 아닌 전체를 이야기하는 것이니까요.
중성적인 공간을 만든다
두 분이 디자인한 놀이 풍경 안에서 아이들이 만들어갈 다채로운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그렇다면 놀이공간을 디자인할 때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서민우: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좋은 공간을 누릴 수 있을지 고민해요. 놀이터가 아이들의 진을 빼는 목적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생각하면 좋겠어요. 어떤 아이는 신나게 놀고 싶고, 어떤 아이는 가만히 쉬고 싶을 수 있죠. 공간을 통해 아이들이 때마다 원하는 행동이 충족된다면 좋은 공간이 되는 거에요. 이렇게 아이들의 다양한 욕구에 대응할 수 있는 곳으로써 중성적인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요.
지정우: 놀이 풍경은 재미와 즐거움만이 목적이 아니라 아이들의 마음이 쉼을 얻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해요. 그 자리에 아이가 잠깐 시무룩하게 앉아있다 가더라도 왠지 마음이 좀 더 편안해질 수 있는 거죠. 혹은 친구들과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더라도 방 안의 형광등 아래에서 하던 느낌과는 다른 것이 있을 테고요. 그들만의 생활이나 활동을 존중하는 입장으로 아이들을 보는 것이 필요해요. 중성적인 공간에 부연설명을 드리자면 아이들에게 특정한 놀이를 하도록 지시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또한 어른들처럼 큰 사람, 아이들과 같은 작은 사람, 몸이 불편한 사람, 정신적으로 성숙하거나 그렇지 못한 사람 등 다양한 사람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공간을 중성적인 공간이라고 얘기해요.
ⓒ이유에스플러스건축
장애 아동을 또 다른 그룹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 출발점
그럼 통합적인 관점에서 장애 아동들도 함께할 수 있는 놀이공간에는 어떤 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세요?
지정우: 모든 사람들은 신체적 능력이나 정신적 능력이 어느 정도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장애, 비장애아동으로 이분법적인 분류를 하는 것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회 운동 측면에서는 통합놀이터를 강조해서 장애 아동의 놀이권을 중시해야 하기도 하겠지만 저희는 디자인의 모든 관점에서 그 부분은 상식적으로 담겨 있어야 한다고 봐요. 장애 아동을 또 다른 그룹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 출발점인 것이죠. 물론 개별 단품 놀이기구는 분명히 적용돼야 할 부분이 있을 거예요. 엄마와 마주 보면서 탈 수 있는 그네가 나오고, 또 바구니 형태 그네로 여러 명의 아이들이 같이 탈 수도 있고, 이런 식으로 다변화되는 기구가 필요할 수 있죠. 하지만 한 품목을 잘 디자인하거나 정책 한 번으로 통합적인 놀이 터전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아이들의 놀이 풍경에 대한 어른들의 마인드 자체가 바뀌어야 하죠.
해외에서 오래 거주를 하셨는데요. 해외에서 인상 깊었던 놀이터 사례는 어떤 것들이 있으신가요?
서민우: 놀이터라고 한정 지어서 본다면, 일본의 모험놀이터가 충격적이었어요. 아이들이 톱질하고, 망치질하고, 옆에서 불을 피우는데 엄마들은 대화를 나누기 바빴죠. 그때가 겨울이라 아이들이 콧물을 흘리면서 합판으로 자신들만의 기지를 만들어 오르락내리락하는데, 보는 제 심장이 철렁했어요. 놀이터라고 하면 안전이 중요한데, 그런 상식을 깨버리는 기억에 남는 곳이었어요. 나중에 일본의 모험놀이터에 대해 찾아봤는데, 아이 한 명은 부모뿐 아니라 그 동네 사람들이 키운다는 의미에서 모험놀이터가 계속 성장해왔고 지켜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우리가 새로운 관점에서 고민해야 될 그런 놀이터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어요.
지정우: 뉴욕 센트럴파크 주변에 놀이터가 7~8개 정도 있어요. 그 놀이터들 옆에 커다란 암반이 있고 뒤로 울창한 나무와 멀리 미드타운에 고층 빌딩이 그림처럼 배경으로 서있죠. 한 마디로 아이들의 놀이터가 도시 그 자체인 거예요. 거기서 그렇게 놀고 성장하면서 한 해 두 해 기억이 쌓였을 때 그런 것이 자기가 살아가는 데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힘들 때 뒷받침해 주는 기억이 되기도 할 거예요. 어찌 보면 생애 주기적인 통합이 될 수 있는 거죠. 지치거나 힘들 때 그 사람의 생애 주기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놀이터가 될 수도 있는 거니까요. 잘 설계된 놀이터가 아이들의 기억을 담아주면 그런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거예요.
서민우: 놀이터는 아이들이 놀기 좋아야 하지만, 더 큰 위험을 미리 연습하는 장소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런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에 대한 이슈가 놀이터에서는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최대한 안전하게 만들어서 설계했다고 해도 규정과 제도화된 틀의 검수과정에서 실현되지 못한 경우가 많이 있어요. 저는 인상 깊었던 놀이공간을 해외가 아니라 우리 동네에서 찾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러기 위해서 대단한 제도 개혁과 큰 예산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고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조금 넒히거나 다른 방향으로 바라봐도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어요.
지정우: 요새 해외 사례들도 그렇고 특히 온라인상의 좋은 이미지들을 많이 참조하는데, 저는 차라리 지도나 동네를 봤으면 좋겠어요. 동 이름의 유래부터 조선시대에 땅이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등 말이죠. 이런 조사에서 의미 있는 레퍼런스가 생길 수 있거든요. 기존의 이미지가 주는 선입견을 최대한 배제하고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거죠. 디자이너는 끊임없이 영감을 찾는 사람들이잖아요.
서민우, 지정우 님의 인터뷰 전문은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 3호 <놀이>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