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대가 아닌 놀이 스토리를 위한 디자인


김연금 조경작업소 울 소장


인터뷰 김병수

사진 조경작업소 울




ⓒ조경작업소 울


어린이의 놀이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해요


저희가 소장님께서 하셨던 인터뷰를 찾아보니까 ‘놀이대가 아니라 놀이를 디자인해야 한다’ 그런 말씀을 해주셨더라고요. 

그러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놀이터 디자인에 있어서 어린이의 놀이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말이에요. 놀이터 디자인이나 놀이기구 배치에 대한 공간 구성도 중요하지만 우선적으로 어린이의 동선과 어린이들이 이 공간에서 어떻게 반응할지를 머릿속에서 지속적으로 시현해 봐야 합니다. ‘여기서 매달린 다음엔 어디로 갈까?’ ‘큰 어린이들은 이렇게 놀고 작은 어린이들은 이렇게 놀겠지?’ 이런 생각들을 계속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어린이들이 노는 것을 잘 관찰하는 시간이 필요하죠. 그러면서 데이터를 두텁게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아들이 많이 노는 공간에는 저희가 철봉 같은 것들을 잘 놓으려고 하지 않거든요. 왜냐하면 그 나이대 어린이들은 팔의 힘이 약해서 매달리는 활동을 잘 하지 못하고 뛰어다니는 활동을 더 선호하거든요. 저희는 어린이들의 놀이 방식에 중점을 두고 디자인을 합니다.




어린이들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과정 중심의 워크숍


어린이 참여형 워크숍을 자주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놀이터를 디자인하는 과정 중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희는 워크숍을 많이 해 봤으니까 어린이들의 그림이 어떨지 예측되는 부분들이 있기는 해요. 만약 워크숍 결과물을 처음 본다면 신기하게 바라보면서 해석을 할 텐데, 이제 익숙해지니까 무뎌진 부분이 분명 있는 것 같아요. 어린이의 참여를 어떤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한 거라고 생각하면 큰 의미가 없죠. 그 차원보다는 어린이들에게 자신이 놀 공간디자인에 참여할 기회를 준다는 차원에서 해야 하는 건데 우리는 목적 지향적 관점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어린이의 참여가 어떻게 도움이 된 건지를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물론 어린이가 그린 그림이 주는 통찰력도 분명히 있고 어른과 어린이 간의 관점 차이도 분명 있고요. 저는 ‘어떤 어른들이 학교에 찾아와서 예전에 우리에게 어떤 놀이터를 지을지 물어봤었어.’라고 떠올릴 수 있는 경험들이 어린이의 삶에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해요. 어린이를 결과를 만들어내는 도구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 거죠.


통합놀이터를 디자인하시면서 제약사항 같은 것도 꽤 있으셨다고 들었어요.

통합놀이터에 대한 사회적 이해의 부족 등 제약사항이 많죠. 실무적으로는 놀이터 안전기준이 많이 엄격해요. 내용이 엄격한 것도 있지만 절차가 경직되어 있는 것도 커요. 그래서 놀이터와 관련된 일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시도를 하는 데 한계가 되죠. 특히 안전기준은 통합놀이터를 전제로 하지 않고 만들어졌기 때문에 안전기준을 맞추면서 통합놀이터가 추구하는 바도 구현하기 위해서는 고민이 많이 필요합니다.




놀이공간에서 어린이들이 스토리를 

만들어갈 수 있는 디자인이 필요합니다


디자인 과정에서 제약사항에 대해 얘기를 나눴는데요. 그렇다면 놀이터 디자인에 있어서 중요한 것들은 어떤 게 있을까요?

어른들은 시소, 그물 등 기구를 놀이터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죠. 그런데 어린이들의 놀이에는 어른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어요. 그 무언가를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일단 놀이는 어린이들에게 맡겨진 온전히 자유로운 활동이라는 전제를 깔고 접근해야 이해가 좀 더 쉬울 거예요. 그리고 놀이터에서 어린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놀이 스토리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트램펄린이나 짚라인 같은 것은 어린이들에게 있어 고강도 활동의 놀이이면서 어린이들을 금방 흥분시키지만 스토리는 없죠. 반면 어린이들이 놀이터에서 술래잡기를 하는 과정은 분명 스토리가 있어요. 친구에게 “우리 지옥 탈출 놀이할까?”라는 제안을 하는 것에서부터 실랑이도 있고 룰을 조정하는 과정도 있고요. 유아들은 주변을 탐색하면서 놀이를 시작할 거리를 찾죠. 그런 과정 또한 놀이예요. 그런데 요즘은 어린이들이 놀이터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지 않다 보니까 놀이터를 짧은 재미를 추구하는 방식으로 디자인하는 게 문제인 것 같아요. 짚라인 같은 건 그냥 타고 재밌으면 끝나잖아요. 놀이공간에서 어린이들이 스토리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말씀하신 것처럼 어린이들에게 좋은 놀이터란 스토리가 있고, 상상력을 발휘하며 놀 수 있는 공간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그렇죠. 그런데 상상력의 발현이라는 단어는 좋지만 자칫 오해의 소지가 될 수도 있는 단어인 것 같아요. 대부분 상상력 자극이라고 하면서 시각적인 걸 잔뜩 넣으면서 작업을 해요.


“충분한 시간과 공간과 친구를 줘야 놀이가 제대로 실현될 수 있어요.” 


그리고 저희가 놀이를 

좋은 놀이와 나쁜 놀이로 나눌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주도권을 돌려주어야 할 놀이를 

방해하고 있지 않았는지 

돌아보는 것부터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조경작업소 울




놀이는 자기 의지에 의해서 시작되고 끝맺는 것


좋은 놀이터에 대해 의견을 주셨는데 그렇다면 어린이들에게 좋은 놀이란 어떤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놀이라는 건 자발적인 행동이죠. 그래서 어떻게 보면 좋은 놀이라는 건 없는 것 같아요. 놀이는 어린이의 삶인데 어떻게 삶을 좋다 나쁘다 말할 수 있겠어요? 어린이 본인이 시작해서 자기가 흥미 있고 자기 의지에 의해 하는 것이죠. 자기의 의지대로 놀기 위해서 공간이 있어야 하고 시간이 있어야 하고 친구가 있어야 해요. 굳이 좋은 놀이라고 이름 붙인다면 그런 것들이 보장되는 놀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어린이가 충분한 시간이 있다면 놀이터에서 트램펄린만 타지 않거든요. 트램펄린 타다가 친구들이랑 놀기도 하고요. 그런데 충분한 시간이 없으면 트램펄린만 타고 가게 돼요. 그런 점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 같아요. 짧은 재미만을 추구하는 활동이 놀이로 여겨지게 돼죠. 어린이들에게 충분한 시간과 공간과 친구를 줘야 놀이가 제대로 실현될 수 있어요. 그리고 저희가 놀이를 좋은 놀이와 나쁜 놀이로 나눌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주도권을 돌려주어야 할 놀이를 방해하고 있지 않았는지 돌아보는 것부터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작업을 하면서 계속 드는 생각은 공간을 

만드는 건 인권에 대한 문제라는 거예요.” 


우리가 유니버설 디자인, 

통합놀이터 디자인을 하면서 


인권에 대한 이해나 감수성을 키우지 않으면 

흉내 내는 것에서 끝나게 되는 것 같아요.




공간을 만드는 것은 인권에 대한 문제


놀이터 디자이너나 관련된 실무자를 대상으로 제언해 주신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통합놀이터뿐만 아니라 어떤 놀이터든지 작업을 하면서 계속 드는 생각은 공간을 만드는 건 인권에 대한 문제라는 거예요. 우리가 유니버설 디자인, 통합놀이터 디자인을 하면서 인권에 대한 이해나 감수성을 키우지 않으면 흉내 내는 것에서 끝나게 되는 것 같아요. 디자이너들에게 필요한 사회에 대한 관심이나 인권에 대한 이해와 감수성은 분명 관심에서 시작하는 것이고 또 그건 사회를 넓게 보기 위해 필요한 것이기도 하죠. 근데 저조차도 잘 안돼서 매번 노력하고 있어요. 구현하는 기술의 문제도 분명 중요하고 전문가로서 계속 탐구해야 하는 일이긴 하지만 그것만 보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사회 전반적으로는 어떤 것들이 수반되면 통합놀이터가 발전될 수 있을지 의견 부탁드립니다.

일단 장애 어린이들도 마음껏 놀 수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인 인식이 필요하겠죠. 그 인식 안에서 안전기준에 대한 것도 바뀌어야 할 거고요. 다양한 조직들도 그런 지향점을 가져야 하겠죠. 그래서 이벤트성의 통합놀이터를 만드는 게 목적이 아니라 유니버설 디자인, 통합놀이터가 사회의 기본적인 인프라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연금 님의 인터뷰 전문은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 3호 <놀이>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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