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하고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한 공간


카렌 브렛마이어 Karen Braitmayer

스튜디오 퍼시피카Studio Pacifica 대표


인터뷰 미션잇 편집부

사진 Chibi Moku



카렌 브렛마이어는 스튜디오 퍼시피카Studio Pacifica의 대표로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건축가이자 접근성 전문가로 활동해왔다. 그는 2010년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 재임 시절 미국 접근성 위원회US Access Board 위원으로 임명되었으며 건축뿐 아니라 유니버설 디자인, 장애 학생을 위한 멘토링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며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카렌 브렛마이어 ⓒChibi Moku


누군가 “카렌 브렛마이어 없이는 접근성 디자인을 논할 수 없다” 라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몇 년 전 시애틀을 대표하는 건물의 접근성 개선 프로젝트를 맡으셔서 화제가 되기도 했고요.

시애틀 스페이스 니들Seattle Space Needle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를 통해 내부 전망대에 설치된 리프트를 타고 외부 전망대까지 올라갈 수 있게 개조했죠. 언론에서는 이 리프트를 가장 많이 보도하긴 했지만 저는 외부 전망대에 새로 설치한 유리창도 정말 마음에 들어요. 예전에는 외부 전망대 가장자리에 있던 레일이 시야를 가려서 키가 작으면 아래를 내려다보지 못했어요. 이번에 레일을 모두 제거하고 바닥까지 이어지는 투명한 유리를 설치했죠. 물론 좀 무섭긴 해요. 하지만 접근성이 정말 좋아진 거죠. 휠체어를 탄 사람도 남들과 똑같이 아래로 내려다볼 수 있게 됐으니까요. 이제는 다 같이 ‘아악!’ 하고 소리 지를 수 있어요 (웃음). 


건축가이자 오랜 기간 접근성 전문가로 활동하신 관점에서 안전과 접근성은 어떤 관계가 있나요?

안전의 정의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해요. 물론 접근성은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독립성을 부여하기 위해 존재하는 개념이에요. 하지만 독립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 오히려 가족이나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는 사람도 있죠. 일상의 번거로운 일들은 누군가의 도움으로 빨리 해치워버리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에 에너지를 쏟으려는 거예요. 그런 경우라면 장애를 가진 사람뿐만 아니라 그 분을 도와주는 사람들의 안전까지 동시에 고려한 디자인이 필요합니다. 또 진행성 장애가 있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안전의 정의가 달라질 수 있어요. 지금은 독립적인 일상이 가능하더라도 언젠가는 도움이 더 필요할 테니까요. 이런 경우에는 보호자가 가까이서 도울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 고민하고 대비해야 하죠.




롤링 상판을 서랍처럼 당기면 알맞은 높이의 믹서기 전용 카운터가 생긴다. ⓒChibi Moku


가로가 넓은 레이아웃의 가스레인지 덕분에 휠체어를 탄 상태에서 2선에 올린 냄비까지 잡을 수 있다. ⓒChibi Moku




집에서 요리도 굉장히 많이 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주방 환경의 경우는 어떠세요?

가사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도 중요해요. 우리 집 부엌의 경우 모든 가전제품이 손 닿는 곳에 있도록 개조했어요. 휠체어에 앉아서 가스 불 위로 손을 뻗으면 위험하니까요. 물건을 집으려고 몸을 심하게 기울이지 않아도 될 방법도 고민했어요. 중요한 안전 이슈죠. 일단 한 번 앉은 자리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어야 해요. 싱크대 앞에 있다고 하면 한 쪽에는 음식물 쓰레기통, 다른 한 쪽에는 식기세척기를 두는 거죠. 저녁식사를 마치면 잔반처리와 설거지를 한 곳에서 해결할 수 있게요. 식기세척기 작동이 끝나면 바로 옆에 있는 수납장에 접시를 정리합니다. 부엌에서 돌아다닐 필요가 없도록 동선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짰어요. 덕분에 힘도 아낄 수 있고요.




많은 대답을 해보셨겠지만, 그래도 여쭤보고 싶은데요.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요?

‘좋은 디자인이란 접근할 수 있는 디자인Good design is accessible design’ 이라고 생각해요. 멋진 건물을 지었다고 해도 누군가 그 건물에 접근할 수 없다면 그것은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 아니에요. 결국 좋은 디자인이 아닌거죠. 좋은 디자인은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모든 유형의 사람을 폭넓게 고려한 디자인이에요. 초점을 사람에게 맞추는 것이죠. 장애는 지극히 일반적인 인간의 삶에 일부일 뿐이에요.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누구든 장애를 겪게 돼요. 그러니까 부끄러워할 것도 없어요. 머리색이 어둡거나 밝거나, 귀가 크거나 작은 거나 다름없어요. 장애는 각자 다른 신체 특징일 뿐인 거죠.


좋은 디자인을 위해 노력하는 디자이너와 독자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보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장애인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배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물어보는 것입니다. 장애인 당사자나 그 가족들을 위해 디자인하게 된다면 질문을 많이 하세요. 그리고 경청하세요. 듣고 이해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 디자이너를 위대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만약 본인이 디자이너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세요. 그리고 디자인에 기여하세요. 당신이 들려주는 생생한 이야기가 누군가의 관점을 완전히 바꿔버릴지 모르니까요. 그것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입니다. 저는 정말 그렇게 믿어요.



카렌 브렛마이어의 인터뷰 전문은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 4호 <안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