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을 위한 느림의 공간
리처드 도허티 Richard Dougherty
리처드 린던 디자인Richard Lyndon Design 대표
인터뷰 미션잇 편집부
사진 Richard Dougherty
리처드 도허티는 16년간 홀 맥나이트Hall McKnight에서 건축가로 일했고 건축, 조경, 인클루시브 디자인 분야에서 영국 디자인 카운슬 전문가British Council Design Associate Expert로 활동하고 있다. 갤러뎃 대학의 6번가에 위치한 보행자 전용도로 크리에이티비티 웨이Creativity Way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였으며, 최근 리처드 린던 디자인Richard Lyndon Design을 설립하였다. 리처드 본인과 아내 그리고 딸과 아들 모두 청각장애인이다.
ⓒRichard Dougherty
시각, 촉각 등 여러 감각으로 공간을 경험할 수 있도록 설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계기로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셨나요?
오래전 일이에요. 제가 7살 때 빛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경험이 있어요. 저희 형제들과 부모님 중에 저만 청각장애인인데요. 군데군데 작은 창문만 있는 어두운 집에 살았죠. 그러던 어느 날 정전이 됐어요. 전기가 차단되고 불이 모두 꺼졌죠. 순간 패닉을 느꼈어요. 귀도 안 들리고 눈도 안 보이니 갑자기 시청각장애인deafblind이 된 거죠. 그때 엄마가 벽난로를 켰고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어요. 난롯불에 비춰 가족들의 입 모양을 읽고 나서 비로소 안정을 되찾았어요. 빛이 얼마나 소중한지 강렬하게 깨달았던 순간이에요. 그때부터 빛은 제 디자인 철학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청각장애인에게 빛은 남다른 의미를 가지는군요. 또 어떤 디자인 요소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오히려 작은 디자인 요소들이 모여 청각장애인의 일상을 더 풍부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소리 대신 다른 방법으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되는 거예요. 곳곳에 거울을 두고 등 뒤에서 일어나는 일을 눈으로 확인하거나, 타일 대신 목재를 이용해서 누군가의 발자국 진동을 느끼는 거죠. 둥근 테이블에 모여 앉아 천장에서 내려오는 따뜻한 빛으로 서로 얼굴을 보고 대화할 수 있고요. 늘 텍스처와 빛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공간을 디자인하려고 해요. 외관이 아름다운 건물보다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총체적인 경험이 더 중요하니까요. 문을 여는 순간부터 공간의 중심은 사람이어야 해요. 손으로 계단 난간을 잡았을 때의 느낌, 아침 햇살을 받으며 커피 한 잔을 음미할 때의 경험을 더 세심하게 여겨야 하죠.
6번가 프로젝트의 크리에이티비티 웨이 한 켠에는
청각장애인 직원들이 운영하는 카페테리아가 있다.
청각장애인 커뮤니티와 비장애인 주민들이
서로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취지였다.
ⓒRichard Dougherty
수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위해 눈의 피로를 최소화하는 디자인의 중요성을 언급하셨는데요. 조명 외에도 어떤 요소가 고려돼야 할까요?
우선 배경색이 중요하죠. 수어 동작을 명확하게 보려면 연한 블루 혹은 그린 계열의 단색 배경이 가장 적합해요. 갤러뎃 캠퍼스를 걷다 보면 이 두 가지 색을 가장 자주 볼 수 있어요. 공간의 크기도 중요하고요. 벨파스트에 있는 광장을 설계한 적이 있는데요. 25 제곱미터, 그러니까 두 사람이 공공장소에서 서로의 표정을 읽을 수 있는 최적의 거리를 계산해서 아담한 정사각형 공간으로 디자인했어요. 서로 거리가 더 멀어지면 웃는 표정을 볼 수 없거든요. 친근하고 편안하면서도 명확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공간을 디자인하는 게 중요하죠.
청각장애인에게 소리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쉬울 것 같은데 데프스페이스 가이드라인에 음향도 포함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모순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음향도 데프스페이스 원칙의 핵심 요소 중 하나예요. 시끄러운 레스토랑에서 대화할 때 누구든 스트레스를 받지만 청력 보조장치를 사용하는 사람은 소음이 한층 더 증폭되죠. 현재 더블린Dublin에서 청각장애인 커뮤니티를 위한 카페테리아를 설계하고 있어요. 소음이 반사되지 않고 흡수되도록 천장은 목재로 제작했죠. 이런 디자인은 어르신들에게도 도움이 돼요. 나이가 들어 청력을 점점 잃게 되면서 즐겨 찾던 식당도 잘 안 가게 되는 분들이 많아요. 주변 소음이 너무 심하기 때문이죠.
장애와 상관없이 모두에게 가장 이상적인 공간을 고민하신 거네요.
일부 서구 국가에서 우생학Eugenics 이라는 잘못된 신념이 퍼진 시기가 있었어요. 특정 집단을 열등하다고 여겼죠.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끔찍한 일들을 당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최근에는 다양한 관점을 포용하고 나와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우면서 세상을 알아가야 한다는 의식이 생기고 있죠. 파빌리온에 원형 지붕을 제안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천장에서 들어오는 빛으로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면서 수어를 하든 춤을 추든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곳이었죠. 지붕 가장자리에는 비즈가 달린 굵은 줄을 걸어서 마치 숲을 지나 빛이 쏟아지는 곳으로 나온 느낌이 들게 했습니다. 풍부한 색은 독일 건축가 고트프리트 젬퍼Gottfried Semper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임시로 설치한 파빌리온이지만 다채로운 감각 경험을 선사했던 프로젝트였습니다.
리처드 도허티의 인터뷰 전문은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 4호 <안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