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데프스케이프


알렉사 본 Alexa Vaughn

MIG 건축사무소 조경 디자이너


인터뷰 미션잇 편집부



조경 디자이너이자 접근성 전문가인 알렉사 본은 건축가 한셀 바우만의 데프스페이스 개념을 발전시켜 데프스케이프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청각장애를 고려한 공간 디자인을 조경 디자인으로 확장한 개념으로, 최근 들어 많은 청각장애인 건축가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알렉사 본 역시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으며 최근 로마 프라이즈 펠로우Rome Prize Fellow로 선정되어 이탈리아 로마에서 조경 디자인을 연구하고 있다.



알렉사 본 © Claire Paice


데프‘스페이스’ Deaf Space와 데프‘스케이프’ Deaf Scape는 어떻게 다른가요?

데프‘스페이스’는 2006년에 건축가 한셀 바우만이 만든 개념이에요. 갤러뎃 대학교 캠퍼스 프로젝트에서 탄생했죠. 저는 대학원 시절 데프스페이스 원칙을 처음 알게 됐어요. 하지만 내용이 대부분 실내 건축과 건물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그래서 조경 디자인에 그대로 적용했어요. 데프스페이스 건축 철학을 확장한 거죠. 데프‘스케이프’ 라는 이름으로요. 데프스케이프 원칙은 굉장히 실용적이기 때문에 도시설계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프로젝트에 폭넓게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최근에 다양한 장애인 커뮤니티와 대화를 나눴는데 장애 유형에 상관없이 누구든 넓은 통로와 조명이 잘 돼 있는 밝은 공간을 선호하더라고요. 감각 과부하를 자주 경험하는 신경다양성 커뮤니티도 길을 걷다가 어딘가 안전하게 둘러싸여 있다는 느낌이 드는 작은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어요. 거리의 소음을 피해서 쉬어 갈 수 있으니까요. 


데프스케이프의 8가지 원칙 중에 안전한 공간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원칙이 있다면요?

8가지 원칙들이 서로 상호보완적이기 때문에 하나만 꼽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사실 모든 원칙은 모두가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을 디자인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그리고 그 공간을 시각적 단서와 촉각적 단서로 탐색할 수 있게 디자인하는 거죠. 붐비는 구간에서도 사람들이 방향을 찾고 계속 앞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표시해 주는 거예요. 개인적으로 3번째 원칙인 인클로저Degree of Enclosure 원칙을 가장 좋아해요. 데프스케이프에서 말하는 인클로저란, 다른 보행자와 부딪히지 않고 잠시 혼자 쉬어 갈 수 있는 아늑하고 안전한 공간이죠. 보통 보행로 가장자리에서 볼 수 있어요. 공간의 뒤쪽은 막혀 있고 전면은 개방돼 있고요. 외진 곳은 아니면서도 프라이버시가 어느 정도 보장되죠. 




캘리포니아주California 웨스트 캐피톨 가로수길West Capitol Avenue. 이곳에서 데프스케이프 

원칙 중 하나인 시각적 단서의 예시를 찾을 수 있다. 횡단보도가 시작되는 지점과 길을 건너는 곳, 신호 대기하는 곳의 컬러를 명료하게 

구분하되 주변 조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했다. 이 프로젝트는 2010년 APA 올해의 교통 프로젝트 상을 받았다. 

© Design: MIG Inc. © Photographer : Billy Hustace




데프스케이프가 시각적 요소와 촉각적 요소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다른 장애유형이나 노화로 시력이 저하된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맞아요. 데프스케이프의 기반이 되는 데프스페이스 원칙이 만들어졌을 당시에도 청각장애와 시각장애를 모두 가지고 있는 시청각장애인도 참여했다고 해요. 제가 촉각적 요소 가이드라인을 만들 때 전맹, 저시력 시각장애인에게 무엇이 필요할 지 고민했어요. 공공장소를 다니기 힘들어하는 신경다양성 커뮤니티와도 충분히 공통분모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데프스케이프는 조경 분야의 유니버설 디자인 원칙인 셈이네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모든 장애유형의 전문가라고 할 수는 없어요. 그 점은 항상 강조하려고 해요. 제가 모든 청각장애인을 대변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예를 들어 저는 어렸을 때 수어를 사용하지 않았어요. 23, 24살이 돼서야 수어를 배웠고 지금도 평소에 구화를 가장 많이 사용해요. 청각장애인 커뮤니티 안에서도 사람마다 필요가 각각 달라요. 그래서 데프스케이프의 8가지 원칙이 모두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지레짐작하지 않으려고 해요. 프로토타입을 가지고 장애인과 직접 테스트 해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겠죠. 데프스케이프가 만병통치약이 될 거로 생각하진 않지만 앞으로 어떻게 적용하고 확장해 나갈 수 있을지 기대하고 있어요. 


데프스케이프가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지만, 사람들의 필요가 각각 다를 수도 있다는 말씀이 인상깊네요. 그렇다면 모두에게 안전한 공간이란 어떤 공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누구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만큼 넓은 공간이 안전한 공간인 것 같아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모든 디자인 요소의 통합이 가장 중요해요. 여기 접근성 요소 하나, 저기 하나 두는 게 아니라 모든 요소를 총체적으로 묶어서 고민하는 거죠. 데프스케이프 원칙으로 실현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통합적인 디자인이에요. 또 다른 우선순위는 선택지를 충분히 제공하는 거예요. 장애의 종류가 정말 다양하기 때문이죠. 조명을 예로 들자면 다양한 높이, 조도, 형태 등 그 공간을 즐길 방법을 다채롭게 고민해야 해요. 장애인 커뮤니티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접근성을 하나의 창의적인 도전으로 바라보라고 격려하곤 해요. 

또 창의적인 접근성 디자인의 해답은 장애인 커뮤니티가 쥐고 있다는 

사실도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죠.

캘리포니아 같은 경우 모든 공공 프로젝트에 장애인 당사자 참여가 

법적 의무에요. 투덜거리면서 최소 기준만 간신히 맞추기보다, 

기왕이면 창의적으로 재밌게 해보자는 거죠.



알렉사 본의 인터뷰 전문은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 4호 <안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